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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존엄」위한 법제화를(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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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존엄」위한 법제화를(사설)

입력
1993.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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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부재와 인간성 상실의 천박한 기계문명이 인간을 기술의 노예로 전락시킬 것이라는 세기말적 경고를 우리는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그런 가공할 현상이 우리 주변에서마저 예사로 빚어져온 줄은 차마 몰랐다. 최근 경희의료원에서 터져나온 마구잡이 인공수정 시술파문이야말로 엷어져가는 의료윤리의 틈을 비집고 과학과 의술의 이름으로 인간생명 탄생의 존엄성마저 가차없이 짓밟은 표본적인 사례여서 너무나 충격적이다.경희의료원의 자체 조사로 드러난 마구잡이 시술실태를 보면 인술이라는 일컬음이 오히려 부끄러울 지경이다.

아기를 갖지 못하는 여성의 한을 풀어준다면서 출처 불명의 정자를 제공받은뒤 무서운 후천성 면역결핍증이나 매독 등 각종 질병검사나 혈액형 등 기초 조사조차 하지 않은채 6백50회나 인공수정을 예사로 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한 사람의 정자를 여러명에게 나누어 시술한 사례나,기형아출산의 사례마저 있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국 40여개 병원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다지만 이같은 윤리부재의 인공수정 시술이 매달 2백여회나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방치해온 감독관청인 보사부와 의학단체 등 의료계 자체의 무책임과 도덕적 불감증을 통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시키고 의술은 인술이라며 기술에 앞선 사명감을 유달리 강조해온 의료계가 아닌가. 그런데도 남의 손재주와 기술은 재빨리 들여오면서도 외국에서 기술개발에 따라 더욱 강조되고 있는 윤리적 장치는 외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천박한 의료기술 제일주의의 오만에 빠져 오늘의 파문을 낳기에 이른 것이 아닌가.

이번 파문으로 파면당한 문제의 의대 교수의 항변이 너무 놀랍다. 정자를 구하기가 어렵고 비용도 많이들어 검사를 못했고 이런 현상은 다른 병원도 마찬가지이기에 다른 이유가 숨겨져있는 이번 파면조치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듣기에 이런 궤변이 또 있을까 싶다.

또한 그런 자세로 모든 병원이 수련의사와 학생들을 태연히 교육시키고 정자마저 예사로 제공받아 왔다니 차라리 할 말이 없어진다.

의학계는 이번 부끄러운 파문에 책임을 질 하수인이면서 가장 큰 피해자이다. 또 이런 윤리의 사각지대를 방치해온 감독기관이나 우리 사회에도 공동책임이 있다. 때문에 의학계는 이번 일을 계기로 천박한 의료기술주의에서 벗어나 윤리성 회복에 절치부심해야 할 것이다.

보사부도 평소 온갖 자질구레한 간설은 마다하지 않으면서 이처럼 큰 규제법규 미비의 사각지대를 방치,결과적으로 우리 의학계의 윤리수준을 떨어뜨린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하루 빨리 의학계의 협조속에 파문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그 결과를 토대로 재발방지와 윤리회복을 위한 규제법 제정에 나서야 마땅하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유지되어야 하고 생명은 외경의 대상이어야 한다. 그것만이 인류문명이 자멸과 기계의 노예화에서 벗어나 유구히 이어질 수 있는 길이다. 모두가 이번 파문의 교훈을 깊이 새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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