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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외치뒤 쓸쓸한 퇴장/부시,텍사스서 「보통사람」 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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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외치뒤 쓸쓸한 퇴장/부시,텍사스서 「보통사람」 여생

입력
1993.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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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격변 치밀대응… 냉전종식 위업/자신 주도 변화물결에 「구 인물」로미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20일 정오(한국시간 21일 새벽 2시) 장엄하게 거행된 제42대 대통령취임식.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 앞에 선 클린턴은 2백여년전 조지 워싱턴이 그랬던 것처럼 고색 창연한 성서에 손을 얹고 선서했다.

단상에는 이제 막 대통령(President)에서 보통사람(Mr)으로 돌아간 조지 허버트 부시(68)가 클린턴 새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성서에 얹혀진 클린턴의 손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나 클린턴은… 전력을 다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순간 부시의 표정엔 지난 4년의 감회가 어리는듯했다.

부시의 뇌리에는 ▲소련붕괴 ▲냉전종식 ▲걸프전 승리 ▲전략핵무기 감축 등 굵직한 외교치적들이 스쳐갔을 것이라고 주요 외신은 전했다. 현직으로서는 9번째로 재임에 실패했다는 회환이 남았으리라는 부연 설명도 뒤따랐다.

과연 부시의 4년은 화려한 외치로 가득차 있다. 반세기 이상 세계를 질식시켜온 냉전을 끝냈다는 사실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충분치 않을 정도다.

비록 냉전종식의 주역이 시베리아의 동토에 페레스트로이카의 훈풍을 몰고온 고르바초프라는 평가가 많지만,역사의 물줄기가 흐트러지지 않게 치밀하게 대응한 부시의 공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취임직후 부시는 소련을 「봉쇄해야 할 적」에서 「의논할 동반자」로 예우,소련의 동유럽 정책을 누그러뜨렸다. 이에 힘입어 폴란드의 헝가리는 자유화의 흐름속에서 순항할 수 있었다.

부시가 대소 기조의 방향타를 적시에 돌릴 수 있었던 것은 어찌보면 하원의원(66년)­유엔 대사­중국 대사­중앙정보국(CIA) 국장­부통령을 거친 충분한 정치·외교적 경험 덕분이었다.

부시 자신이 엮어낸 외치의 클라이맥스는 91년 1월의 걸프전. 그는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응징하는데 전세계를 동참시켰고,월남전과는 달리 분열되기 쉬운 국내여론을 하나로 묶었다.

세계사의 조류도 부시의 외교를 도왔다. 91년 8월 소련에서 발발한 보수파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는 엄청난 사건이 생겼다. 이어 옐친이 등장하고 소련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으로 분열돼 세계 지도에서 사라졌다. 92년 2월1일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 미·러시아 우방시대를 선언할 때만해도 그의 인기는 반석과도 같았다.

그로부터 9개월후 실시된 대선에서 부시는 전후세대의 클린턴에게 고배를 마셔야 했다. 미 국민들은 실업·소득감소·천문학적 재정적자로 허우적대는 경제침체속에서는 외교의 성공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부시는 변화의 시대를 가져왔으나 자신이 일으킨 변화의 파도에 이제 구 시대의 인물로 밀려난 셈이다.

제2의 고향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돌아가는 부시의 뒷모습은 마치 『나에 대한 평가는 훗날 역사가 내릴 것』이라고 말하는듯 했다.<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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