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적자등 과제 “산적”/“변화의한 전진” 기대·우려【워싱턴=정일화특파원】 포토맥강변의 불꽃놀이로 하이라이트를 이룬 첫날의 취임 축하행사에 이어 연 3일째 계속된 축제,연회,음악회를 끝내고 빌 클린턴은 20일 드디어 제42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클린턴의 워싱턴 진출은 참으로 혜성처럼 돌발적이었고 또 그만큼 찬란한 빛을 휘몰고 왔다. 12년만에 등장하는 민주당 대통령답게 민주당의 지지기반인 다양한 인종,다양한 가치관 그룹이 희망에 찬 퍼레이드를 준비했다.
이들은 적어도 클린턴시대를 통해 「변화에 의한 전진」이 충만히 이뤄질 것을 기대하면서 46세의 이 젊은 대통령을 통해 이뤄질 미국의 꿈을 선전해왔던 것이다. 중산층이 잘사는 사회,의료보험 무혜택자가 없는 사회,재정적자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사회,공립학교가 대우받는 교육계 등의 공약이 클린턴의 등장과 더불어 국민들의 가슴속에 스며들어 갔었다. 심지어 군대에서는 동성연애자가 합법화되고 비록 제한된 경우이기는 하지만 마리화나도 법적으로 허용될 것이라는 기대도 클린턴시대에 거는 기대의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입장료 1백50달러짜리에서 1천5백달러를 호가하는 연회장은 채 표를 사지못해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의 아우성으로 소동이 날 정도로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클린턴은 선거운동기간중 미국정치의 최우선 과제를 국제에서 국내로 돌리겠다고 약속했었다. 탈냉전시대를 재정립한다는 부시 후보의 공약을 밀치며 클린턴 행정부는 국내 경제의 발전에 온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국제보다는 국내문제로 백악관의 관심을 돌리겠다는 약속도,또 국내문제를 위해 그렇게 많이 해둔 공약의 준수도 이행하기가 매우 어렵게 돼있다. 첫째,국제문제에 관한 것이다. 클린턴은 12년간의 아칸소주지사를 지내 상당한 행정경험이 있다고는 하나 워싱턴의 핵심 권력기구에서 이뤄지는 교외문제를 다룬 경험이 없다. 때문에 그는 『이번 선거는 외교문제가 쟁점이 아니고 국내문제 그것도 국내 경제문제가 쟁점이다』라고 강조하면서 국제문제는 가능한 뒷전으로 물리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클린턴은 취임 첫날부터 당장 이라크 공격의 뒤처리를 포함한 국제문제에 휘말리게 돼있다. 소말리아 파견군을 언제 어떻게 철수시킬 것인가,아이티 난민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등 눈앞에 닥친 국제문제를 당장 요리해야 한다. 클린턴은 선거공약에서 보스니아 사태에 대해 보다 강력한 무력개입 가능성을 시사했었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던 부시마저도 머뭇거려온 보스니아개입이 생각보다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뻔한 사실이다. 부시가 퇴임 이틀전까지 전폭기 공격을 가했던 이라크를 당장 어떻게 할 것이며 소말리아 파견군대의 철수여부를 어떻게 결정할지가 의문이다.
둘째는,국내문제의 공약이 도무지 10분의 1도 지켜질 것 같지가 않다는 지적이 많다.
클린턴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임기내 재정적자 50% 감축 ▲백악관 인원의 25% 감축 ▲취임 3개월내 전국민의 의료보험화 ▲중산층에 대한 세금감면 등 굵직한 공약은 벌써부터 물건너가 있는 상태이다.
클린턴은 재정적자 50% 감축문제에 대해 『적자폭이 당초 그렇게 큰줄 몰랐다』며 공약파기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다. 당초에는 매년 2백억달러씩 적자를 줄이겠다고 말했는데 이제 보니 매년 30억달러 정도는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애매한 말로 공약을 뒤로 미루고 있다. 국민개보험화 문제는 『취임 3개월내에 국민개보험안을 내겠다는 것이 아니고 그런 안을 회의에 제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이라며 역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있다. 아이티 난민을 더 많이 받아들이겠다던 당초의 약속은 이미 물거품이 됐다. 모든 아이티인들이 클린턴의 취임식을 전후해 미국으로 탈출키 위해 배를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후 『상황이 그렇게 변했다면 공약을 변경할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 클린턴의 대변인은 말하고 있다. 심지어 군대내 동성연애자를 허용하겠다던 공약도 샘 넌 상원 군사위 의장 같은 군사관계 중진들이 반대하자 태도를 누그러뜨려 버렸다.
지난해 11월3일의 대통령선거로부터 불과 2개월 남짓 지나는 사이에 그가 공약한 주요내용들은 이미 물거품이 된 상태인데 과연 이런 엄청난 공약파기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의 인기가 4년동안 얼마나 지속될지,그리고 이런 약점을 안고 공화당 진영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의문이다. 그러나 클린턴은 그가 아칸소주지사에서 일약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고 출마를 선언했을 때 실제로 그가 대통령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드물었듯이 현직 대통령을 물리친 그가 예상외의 업적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클린턴이 젊은 대통령으로서의 동적에너지를 발휘해 난마처럼 얽힌 국내외 문제들을 풀어갈 것인지,아니면 현직 대통령을 밀어내기 위해 순전히 말의 잔치를 벌여 대통령직을 차지한 인물로 남을 것인지를 판가름하는 시험이 바로 20일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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