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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조류와 교훈(부패와의 전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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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조류와 교훈(부패와의 전쟁:4)

입력
1993.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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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물부터 맑게” 독일 정화운동/천원짜리 상품 추천서 쓴 장관 쫓겨나/공직자 부정 여론이 불용/정당·기업등 「탈부패구조」 제도화/음성적 자금조달·수뢰 소지 없애【베를린=강병태특파원】 법과 규율이 지배하는 독일사회에서도 정경유착이나 부정부패가 때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다. 그러나 독일사회에서 심각하게 거론되는 정경유착과 부패사례는 우리 사회와 비교하면 유치한 수준이다. 또 이런 사례들이 부각되고 처리되는 과정은 오히려 이 사회가 지극히 건강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최근 정치지도자들의 도덕성 타락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비상한 파문을 일으켰던 묄레만 경제장관겸 부총리의 「사촌로비」사건을 우리 사회의 관행과 비교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집권연정 파트너 자민당의 차기 당수로 확실시되던 묄레만은 처사촌이 운영하는 작은 기업의 대단찮은 1천원짜리 이아디어 제품을 추천하는 편지를 장관전용 편지지에 친필서명,슈퍼마켓 체인 회사 대표들에게 보내 말썽이 됐다. 기업들은 경제장관의 편지를 진지하게 검토했으나 제품의 실용성이 적어 사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편지사건이 9개월이나 지나 언론에 폭로되자 정계와 사회전체가 묄레만의 과거 「비위」들을 다시 거론하며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묄레만은 고향의 맥주회사를 간접 선전하는 등 「비위」 전력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대목은 장관이 사소한 개인적 청탁을 위해 굳이 자필서명 편지를 쓴 사실이다. 우리 사회라면 소개전화 정도로 충분했을 것이고,특히 편지로 증거를 남기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청탁의 효과나 뒷거래가 없었다는 등의 얘기는 중요치 않다.

이 정도 청탁에 장관이 편지를 써야하고 그게 말썽이 돼 장관사임은 물론 정치생명이 끝나는 사회라면 지극히 건전한 사회라고 할만하다. 그래도 언론들은 『묄레만은 도처에 있다』며 정계의 도덕성 회복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언론들이 지적하는 타락사례들을 보자. 자민당 수뇌인 슈배처 주택장관은 부동산회사 선전용 사보에 이 회사의 「눈부신 성장」을 칭찬하는 글을 써 지탄을 받았다. 신뢰받는 정치인인 집권 기민당 쥐스부트 국회의장은 남편이 공용승용차를 사적인 용도에 썼다고 해서 권위언론들이 사설 등으로 질타했다.

야당 사민당의 총리후보였던 라퐁텐 자르란트주 총리는 자르브뤼켄 시장을 지낸 자격으로 연금을 받은 사실이 폭로돼 신뢰성에 치명상을 입었다. 독일에서는 선거직 공직자도 일정 재직연한을 채우면 연금혜택을 받는데 주총리로 다시 연금대상이 됐으면 시장연금은 포기했어야 한다는 비난이었다.

이같은 사례들은 사실 부패차원보다는 기껏해야 특권남용 정도다. 정계 전체가 「정경유착」을 비난받고 있지만 뇌물수수나 횡령 등이 개재된 독직사건은 적어도 고위공직자 사회에선 없다. 다만 내각책임제에서 고위공직을 맡고 있는 정치인들은 선거구나 지지기반 관리 등을 위해 기업들과 금전거래 없이도 로비나 선전에 나서게 되고 결국 부패논란까지 부른다.

기업들로부터 물질적 급부를 받은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슈투트가르트시가 수도인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의 슈패트 총리는 90년 해외휴가 때 대기업들로부터 자가용 비행기와 호텔 등을 제공받은 사실이 폭로돼 엄청난 파문을 빚었다. 집권당 실력자로 대통령 물망에도 올랐던 슈패트는 『경제중심주 총리로 기업들과 가까울 수 밖에 없고 편의를 제공한 기업 대표들은 친구사이』라고 항변했다.

오랜 조사에도 뇌물수수나 특혜 제공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여론에 몰린 슈패트는 결국 사임,정계를 떠났다.

중요한 것은 이 슈패트 사건이 최근 수년사이 독일사회의 가장 큰 공직자 부패 의혹사건이라는 사실이다. 이 정도면 일단 독일사회는 「윗물」부터 맑고 자정능력 또한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모든 사회의 「부패구조」의 주범인 정계와 고위공직자 계층 대기업 등 사회 상층부가 깨끗한 근본배경이다. 흔히 강조하는 철저한 부패감시나 캠페인 등은 독일의 경우 부차적 요소에 불과하다. 정치의 중심인 정당에서부터 관료기구 기업에 이르기까지 사회체제 전체가 합리와 규율 균형을 원칙으로 조직,운영되기 때문에 부패구조가 생길 여지가 없다. 이를 바탕으로 건전한 사회풍토가 형성,유지된다.

먼저 정당의 정치자금 조달은 엄격히 제도화돼있고,자금출처 및 용도 등을 공인회계 감사절차에 따라 공개하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다. 독일 정당의 수입은 당원 회비와 총선 때 지지유권자 1명당 5마르크씩 계산해 받는 국가보조금 그리고 기부금이 주를 이룬다. 이중 기부금의 액수제한은 없으나 4만마르크(약 2천만원) 이상은 공시 재무제표에 명기해야 한다.

총선이 있었던 지난 90년말 최대정당인 야당 사민당이 총수입 3억4천4백만마르크중 92만 당원 회비가 37.6%,국가보조금 37.2%,기부금이 10.6% 등이다. 집권 기민당은 총수입 3억4천마르크중 74만 당원 회비가 25.5%,국가보조금 41.8%,기부금 21.3%다.

공식 기부금외에 음성적인 정치자금은 있을 수 없다. 정당과 기업을 대상으로 한 공인회계감사 절차도 철저하지만 대기업 조직자체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음성적으로 지원할 수 없게 돼있다.

독일의 대기업은 예외없이 주요 은행들이 자본과 경영에 참여,경제 자체가 「은행관리형」으로 불린다. 여기에 기업 감사기관인 감독위원회에 은행대표와 여야 정치인 노조대표 등이 고루 선임돼 있어 이른바 비자금 조성부터가 불가능하다.

개별 정치인들도 기업이나 개인으로부터 제한없이 기부금을 받는다. 또 연방의원의 3분의 1이 변호사 기업이사 및 감독위원 등이 개인 직업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보듯 사회체제 자체가 권력형 부패가 불가능하게 돼있어 이들의 「정경유착」 형태는 대단한게 못된다. 연방제 지방자치와 직업 공무원제도가 확립돼 권력형 부패의 소지는 한층 적다.

인허가 업무 등 실제 이권이 관련된 일선행정이 이뤄지는 자치단체 조직에선 공무원 부패가 적지 않다. 독일사회라고 해서 「아랫물」까지 깨끗하지는 않고 그럴 수도 없다. 이 때문에 독일 검찰은 지난 86년 공무원 부패 수사특별위원회를 설치,공무원 부정을 집중 단속하고 있다. 금융 및 기업중심으로 「뇌물도시」로 불리는 프랑크푸르트시의 경우 지난 6년간 1천1백건의 공무원 수뢰사건을 적발했다.

적발된 수뢰액수는 3% 정도가 5만마르크(2천5백만원) 이상이고 40%는 1천마르크(50만원) 이하다.

주목할만한 것은 독일 전체 공무원조직의 연간수뢰액을 1억4천마르크(7백억원) 정도로 검찰이 추산하고 있는 점이다. 경제규모에 비하면 많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범죄학자들은 공무원 수뢰가 예산낭비 등 국가에 끼치는 손해를 수뢰액의 수백배인 연간 2백억마르크(10조원) 이상으로 분석,공무원 부정의 해악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일부 시에서는 부패방지국을 설치하고 이권부서장을 2년마다 교체하는 한편 부패사례가 많은 건설공사 현장에 특별검사팀을 배치하는 등 부패방지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언론보도에서 관료조직의 부패상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일반국민들의 권리의식 준법정신이 높고 공무원들의 사회적 지위나 처우도 민간보다 높아 구조적 부패를 낳은 「부패구조」가 없다는 얘기다.

정치상층부부터 건전한 사회전체가 사회전체의 윤리적 건전성을 지키고 자정능력을 만든다. 집권당 총리후보가 기껏 1마르크짜리 환경보호용 무명봉투를 거리에서 나눠주는 것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사회이기에 학부모들이 연말에 50마르크 정도를 모아 담임교사에게 선물을 하면 진정으로 고마워하는 건강한 풍토가 유지되는 것이다.<베를린=황병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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