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며칠앞둔 17일. 서울요지에 있는 모백화점의 앞길은 선물을 사기 위해 몰려든 자동차 행렬로 일대 혼잡을 빚었다. 설날 선물 특수에다 겨울 정기세일까지 겹쳐 이날 체증은 어느 때보다도 더욱 심했다.극심한 교통체증과 비례라도 하는듯 요즘 이 백화점은 연일 「즐거운 비명」이다. 이날 하루동안의 내방고객만해도 50만명이나 된다. 이 백화점은 세일 시작 10일 남짓만에 전년동기(6백37억원) 보다 50% 가량 늘어난 9백4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한 세트에 12만∼15만원씩 하는 갈비세트가 84억원어치가 팔려나갔고 고급양주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나 더 팔렸다.
그러나 이 백화점의 매출이 급증한 것은 양주 때문만이 아니라 주로 고급선물의 판매가 늘어났기 때문. 얼마전까지만 해도 일급 선물로 쳐주던 양주는 3∼4위권으로 밀려났다. 최근의 일급선물은 장수,승진 등의 의미를 담은 행운의 열쇠나 거북 등 순금패물로 무게가 보통 10냥(5백만원 상당) 정도는 되는 것들이다. 세트당 1백만원대를 호가하는 특수은수저 세트(10벌짜리)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으며 양주도 1병에 수십만원짜리가 잘 팔린다. 서민들은 한달 벌어도 모을까말까 하는 거금이 단한번 인사치레로 드는 셈이다.
일부에서는 이처럼 고급선물의 수요가 크게 늘어난데 대해 정권교체기를 맞아 줄대기용 선물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으며 금융권의 인사자율화 등으로 선물의 등급이 인플레됐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선물준비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모대기업 간부의 고백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선물의 등급이 급등하는 바람에 선물받을 사람의 급수 재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어렵게 선물하고도 격이 안맞아 망신당할 수 있다는게 이 간부의 걱정이다.
매년 이 맘때면 설날을 검소하게 보내기 위해 주로 백화점과 대기업을 상대로 선물단속을 벌여온 당국도 어쩐 일인지 올해는 무뎌진 것 같다. 정권말기면 절룩거린다는 오리(레임덕)가 어느새 수입돼 들어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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