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생필품가격 통제」/개혁정책 후퇴우려/“인플레·민생안정 불가피” 주장에/“생산감퇴·시장경제 걸림돌” 비난【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러시아 총리가 새해들어 빵 고기 등 주요 생필품에 대한 가격통제를 단행하면서 러시아가 그동안 추진해온 급진개혁정책이 크게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타르 타스 통신에 따르면 인플레를 억제하고 주요 생필품의 급격한 가격상승을 막기위해 빵 마카로니 소금 차 설탕 우유 버터 고기 유아용 식품 보드카 등 주요 생필품의 판매가격에서 이윤을 10∼25% 이하로 제한,사실상 가격통제정책을 실시키로 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1월 예고르 가이다르 총리대행이 실시했던 가격 전면 자유화정책을 완전히 뒤집는 것으로서 앞으로 이와 유사한 정책이 계속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가격통제정책은 단기적으로 2천%까지 치솟는 인플레를 억제하고 국민들에게 주요 생필품을 보다 싼값에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지나친 가격통제는 결국 생산의욕을 감퇴시키고 산업전반에 불균형을 초래해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체르노미르딘은 이같은 우려를 의식한듯 『우리는 완전한 가격동결이나 과거와 같은 국가통제 경제체제에 반대한다』고 강조했으나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그의 정책이 명백히 시장경제체제와 반대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체르노미르딘은 또 이번 조치와 관련,자신의 정책 우선목표는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며 침체의 늪에 빠져있는 산업생산력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이미 에너지산업부문에 2천억루블의 저리대금을 지원키로 했으며 타산업 부문에도 보다 낮은 이자율의 자금을 대부해줄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와함께 국가소유의 대규모 공장에 대한 세제감면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에 따른 통화증발 우려에 대해 기존의 조세법을 강화함으로써 엄격하게 통화관리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체르노미르딘의 새로운 경제정책은 아직 전임자인 가이다르 총리대행이 시행했던 급진경제개혁과 비교해볼 때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미지수이지만 과거 급진경제 개혁정책에서 파생됐던 부작용을 실물경제 차원에서 보완하는 성격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보완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행정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아직 자신을 가질 수 없다. 실제로 주요 생필품의 판매가에 대한 이윤을 적정수준에서 통제한다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를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원리로 볼때 이윤이 별로 없어 보이는 장사를 하다가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범죄조직이나 부패관리와 결탁한 일부 자유상점 등에서 이윤의 정확한 통계를 숨기고 부정한 방법으로 특정품목에 대한 폭리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동안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잠시나마 적응해온 러시아 국민들이 시장경제체제의 장점을 인식하기도 전에 다시 과거의 체제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새 총리가 이런 정책을 취하게 된 주된 배경은 물론 오는 4월의 국민투표를 앞두고 치솟는 물가 때문에 불만이 팽배해진 국민들의 마음을 되돌려보려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번 조치로 물가가 현 수준에서 동결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결국 러시아의 경제정책은 현재로서는 뚜렷한 물줄기를 잡지 못한채 서로 상반된 조치로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앞으로 상당기간 이같은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국민들은 20세기에 실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겪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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