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동단계 낙후」 최대 걸림돌/신합섬 어렵사리 개발해도/관련기술 부재로 사장일쑤/“선진국제품 베껴 쉽게 돈벌 생각만”70∼80년대 우리나라의 수출을 주도하며 효자노릇을 해왔던 섬유산업이 80년대 후반이후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고 있다.
사양산업이라고 포기하기엔 거대한 시장규모와 우리의 잠재가능성이 아깝고 그렇다고 주력산업으로 고수하기엔 기술력에서는 선진국에,저임노동력에서는 후발개도국에 밀려 입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20%씩 성장하던 수출이 91년에는 오히려 감소했고 지난해 역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섬유산업은 우리산업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산업이다. 한쪽에선 경쟁력 상실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내리고 있고 다른 한쪽에선 새로운 경쟁력을 무기로 가능성을 찾고 있다. 국내산업 전체가 치르고 있는 산업구조 조정작업의 현장이 바로 섬유산업이다. 의욕과 안주가 공존하고 성공과 실패가 엇갈리고 있다.
기능성을 갖춰 「기적의 섬유」 「꿈의 섬유」 등으로 불린다. 온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카멜레온섬유,실을 특수처리해 옷에서 향기가 나도록 한 방향성섬유,땀은 배출하고 외부수분은 차단하는 섬유 등이 바로 신합섬이다.
신합섬분야는 지난 80년대 후반 일본 등 선진국 업체들이 실용화에 성공하면서 섬유기술의 각축장으로 부상했다.
우리나라도 신합섬개발에 뛰어들어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 섬유선진국을 뒤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상품으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신합섬을 개발하고도 2∼3년이 지나도록 제품으로 생산하지 못하는 것은 제직 염색 봉제 등 관련분야의 기술이 따라와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기술수준이 높다는 화학섬유분야가 이렇다.
동양폴리에스터 기술연구소 김우섭 섬유연구실장은 『어렵게 개발한 신합섬이 관련 기술의 부재로 상품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우리나라의 섬유산업의 전체적인 기술수준은 선진국의 70%수준.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화학섬유의 경우 일본 등 선진국을 1백으로 볼때 우리나라는 85정도이고 대만 등 경쟁국은 80,중국 등 개발도상국은 60안팎이다. 제직과 면방직은 60∼70으로 경쟁국과 비슷한 상태이며 염색은 50∼60으로 경쟁국에도 밀리고 있다.
이는 곧 전반적인 기술의 낙후보다는 분야별 기술수준이 고르지 못한 것이 우리 섬유산업의 최대 취약점이라는 뜻이다. 특히 개발단계의 기술보다 제품가공 및 생산단계의 기술이 더욱 낙후된 것이 좋은 완제품을 생산하는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옷감에서는 염색기술이,봉제에서는 끝마무리가,제품에서는 패선감각이 떨어지는 등 최종제품으로 갈수록 경쟁력이 낮아진다.
이같은 기술의 불균형은 품질불량으로 나타난다. 섬유류의 수출검사 불합격률은 90년을 정점으로 계속 낮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높아 92년말 현재 5.2%로 1% 미만의 선진국에는 비교도 안되고 우리나라 전체 수출상품의 불합격률(4.4%)보다도 높다.
그렇다고 연간 수출실적이 1백50억달러에 달하는 섬유를 포기할 수는 없다. 섬유관계자들은 일본의 예에서 기술의 선진국을 따라잡고 저임금의 후발개도국을 따돌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70년 세계 섬유류 수출량의 약 10%를 차지했던 일본은 한국 대만 등이 가격경쟁에 매달리고 있는 사이 기술개발과 패션에 주력,독일 이탈리아 등과 함께 섬유산업의 고도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신합섬에 관한한 일본은 다른 국가의 추격을 불허하고 있으며 패션강국으로도 급부상하고 있다. 크리스찬 오자르,앤클라인,심플라이프,아놀드파마,다반 등 국내에도 시판되고 있는 이들 세계적인 유명브랜드 의류는 일본상표이다.
이처럼 섬유산업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길은 있지만 섬유업계에는 낙관론보다 비관론이 지배적이다. 섬유산업이 한쪽에서 붕괴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기술개발에 대한 업계의 열의가 부족하고 정부의 지원책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면방업계가 설립한 민간연구소인 한국섬유기술연구소의 장철식소장은 『우리나라 섬유산업은 몸만 있고 머리가 없는 격이다. 화학섬유업계를 제외하곤 연구개발이라는 것이 없다. 아직도 많은 섬유인들이 그냥 선진국의 제품을 베껴서 쉽게 돈벌 생각만 한다』고 개탄했다.<김경철기자>김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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