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수차례 공개적 응징불구/후세인은 건재과시로 “기세”/클린턴 등장후 대이라크정책 “주목”【워싱턴=정일화특파원】 15일 부시 미 대통령은 백악관 정원에서 또 한차례 강력한 최후통첩을 낭독한후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의 임기 마지막 주말을 보내기 위해 헬기에 몸을 실었다.
이를 지켜보던 기자들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재공습을 명령하든 안하든 이라크 사태는 별다른 진전없이 결국 클린턴 정부로 넘어가고 말게 됐다고 생각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하오 4시(한국시간 16일 새벽 6시)까지 후세인이 유엔감시단의 비행기를 받아들이겠다고 수락하지 않으면 이를 유엔결의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간주할 것이며 더이상의 경고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재공격을 말하는 것이었다. 부시의 이같은 성명서는 즉각 후세인의 장막에 들어간듯 모든 일이 느리기로 유명한 아랍권의 행태와는 달리 하오 4시의 데드라인 이전에 『유엔 비행기의 입국을 허용하겠다』는 응답을 보내왔다.
그러나 이라크측의 반응은 유엔측에 의해 「거부」로 해석되고 있어 걸프사태는 여전히 유동적이다.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군에 대해 이제까지 3차례 공격을 가했고 8번이나 유엔결의를 통해 공개적으로 응징했으나 후세인을 그대로 독재권좌에 남겨둔채 자신이 먼저 대통령직을 떠나게 됐다.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은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첫째는 부시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을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독재자』 『무자비한 살인자』 『철저한 평화파괴자』라고 부르는 등 극도의 혐오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계속 왜 후세인 제거를 위한 구체적인 작업은 하지 않을까라는 점이다. 91년 1월의 걸프전을 이틀만 더 끌었더라도 슈워츠코프 대장은 후세인의 세력기반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의 시간이었으면 미군은 추세인 친위대인 공화국 수비대를 거의 완전히 파멸시켰을 것이며 수도 바그다드도 다국적군의 수중에 들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시는 슈워츠코프가 공화국 수비대를 파멸시키려할 바로 그 순간에,그리고 연방군의 선봉부대가 바그다드 외곽으로 진군하려는 순간 전쟁중지를 명령했었다. 부시는 이때 『이라크인들 스스로가 이 독재자를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라크내의 반 후세인 단체를 지원하거나 그런 단체를 조직하는데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았다.
둘째는 후세인의 권력기반이 앞으로도 유지될 것인가라는 점이다.
91년 1월의 걸프전으로 이라크는 전력을 절반이상 잃어버렸으며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방공망이 송두리째 뽑힌 상태이다. 1백여대의 미 항공기가 13일 이라크 남부지방을 공습했을 때 이라크는 어떠한 방공레이더도 작동하지 못했었다. 이미 이라크군은 눈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는 전쟁으로 경제 하부구조가 엉망이 돼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인의 권좌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서구식 시각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얼마나 더 이라크를 두들겨 패야 후세인이 넘어질 수 있을지를 미국으로서는 도무지 계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난 13일의 공습후 미국은 『작전은 충분히 성공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패배를 선언했어야 할 후세인 정부는 『승리의 전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후세인의 기세는 더 올라가고 있는 형편이다. 앵글로섹슨 문화와 아랍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라크는 부시의 퇴임을 바라보면서 새로 들어서는 클린턴 정부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이라크는 『클린턴 정부 시대를 기대한다는 말을 자주하고 있다. 클린턴 정부 역시 후세인은 반대하나 기본적으로 이라크가 해체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 것 같다. 따라서 클린턴 등장후에 아랍권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어떻게 후세인을 다스릴 것인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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