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정부 청결 드라이브/이광요 “부정척결”에 통치 최우선/단돈 10원 뒷거래도 불용/부패관련 공직에서 물러나면 취업못해/금품수수는 쌍벌죄 처벌… 7년이하 징역/성역없는 부정수사 죽은 사람도 안가려【싱가포르=최해운특파원】 새해 벽두 국민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만든 청주 우암아파트 붕괴사건.
지난해 국민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 신행주대교 붕괴사건. 이런 일들이 과연 싱가포르에서라면 일어날 수 있겠는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 아파트나 다리가 무너져 내리는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이곳에 진출해있는 한국건설회사 사람들의 대답이다. 이런 대답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에서 자신들이 경험한 싱가포르 공직사회의 청렴결백과 철저한 윤리의식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 수억달러짜리 관급공사를 여러건 수행한 한국의 한 건설회사 지사장은 『많은 공사에 응찰하면서 한번도 청탁이나 비자금을 제공한 적이 없다. 이곳 공직자 사회는 더이상 깨끗해질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관급공사의 국제입찰과정을 살펴보면 정부가 우선 공사를 수행할만한 건설업체 5∼6개를 선정,이를 상대로 응찰을 받는다. 응찰조건을 면밀히 검토한후 응찰가를 공개하는 것으로 입찰과정은 끝난다.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건설업체에 공사가 주어진다. 여태껏 한번도 잡음이 들린 적이 없다. 모든 것이 공정하다. 내정가라든지 저가심사제도 같은 것도 없다.
이곳에서 수십억달러어치의 관급공사를 경험한 현대나 쌍용건설 관계자가 발주처인 정부나 감리감독기관 등에 저녁 한끼,단돈 10달러짜리 「마음의 선물」하나 준 적이 없다. 주어도 받지않는다는게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관리 뿐만 아니라 돈을 꾼 은행 관계자에게도 단돈 10원의 「뒷돈」도 준 적이 없다. 한 지사장은 현지 은행 관계자로부터 고객으로서 오히려 저녁을 대접받기도 했다.
이같은 공무원들의 청렴결백은 건설업체가 도저히 폭리를 챙길 수 없도록 공사과정에서 철저히 관리감독하는 「조이기작전」으로 힘을 발휘한다. 입찰때 용이하게 뛰어들었던 건설회사는 공사를 끝마칠 때면 초죽음이 된다.
창이공항 제2터미널 공사를 맡았던 현대건설은 본전을 찾기는 커녕 상당한 손해를 보며 겨우 공사를 마무리했었다. 이리저리 설계변경을 해가며 고생을 시킨 싱가포르정부는 완공할 때는 최첨단 컴퓨터기기를 동원,건물의 모든 타일이 제대로 접착됐는지 일일이 체크,우리측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지하철공사 완공식 때 정부공사 책임자는 업자들을 앉혀놓고 『이 공사는 당초 공사예산의 10%를 절감하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게 건설했다』고 자랑,업자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래서 건설업체들은 싱가포르정부 발주공사에 뛰어들 때는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싱가포르의 「깨끗한 정부」는 부패방지법의 엄격한 적용과 이를 실행에 옮기는 절대적 권한을 지닌 「부정부패행위 조사를 위한 특별기구」의 효율적 운영 등 몇가지 제도로 뒷받침되고 있다.
싱가포르도 영국의 식민통치기간이던 지난 50년대까지만해도 다민족 사회와 식민통치란 특수한 사회구조 하에서 사회기강과 도덕이 무너져 관리들의 부정부패는 극심했다. 싱가포르는 지난 52년 통치기구내에 독립적인 지위를 지닌 「부정부패행위조사국(CPIB)」을 설치,공직자의 부패행위를 척결하려고 시도했다.
그 이전에는 부패공무원 수사권은 경찰에 주어져 있었고 경찰간부가 더 부패한 상황에서 부패공무원 척결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따라서 부패척결에 보다 효율적인 CPIB를 발족시킨 것이다. 그러나 초반기에 부패방지방법이 미비해 기능수행에 제약이 가해졌고 시민들도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우려해 소극적이거나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광요가 이끄는 인민행동당(PAP)이 집권,통치권의 최우선 과제로 부패척결을 내세우면서 상황은 변했다.
인민행동당은 60년 부패공직자에 대한 처벌과 CPIB의 부정행위 조사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부패방지법을 정비,강력한 부패척결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매년 수백명의 부패관리들이 파면되고 일부는 감옥으로 보내졌다. 일부 부패관리들은 당국의 조사를 받기전 스스로 공직에서 물러나는 현상도 나타났다. 부패방지법은 그간 63,66,72,81,85,89년 등 개정을 거듭해오면서 처벌규정과 효율성을 보완했다.
현행 부패방지법의 주요골자를 보면 부정을 저지른 자는 7년이하의 징역과 10만달러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있다. 주는 자와 받는 자 모두 적용되는 쌍벌죄로 처벌한다. 부정하게 취득한 동산·부동산은 정부가 법원의 판결전이더라도 동결,압류처분할 수 있고 판결후에는 죄의 경중에 따라 연금 등 각종 혜택이 철회된다. 부정행위로 공직을 떠난후 민간기업에도 취직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일단 부정공무원으로 분류되면 재산상의 엄청난 손해 뿐만 아니라 사실상 사회생활에 있어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중형에 처해지는 것이다.
지난 86년에는 당시 국가개발부 장관이었던 테치앙 원씨가 82년 기업에 특혜를 주는 대가로 2명의 업자로부터 각각 50만달러를 받은 혐의를 받자 자살하기까지 했다. 그는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부인했으나,검찰총장은 그가 죽은뒤 그로부터 1백만달러를 회수하기 위해 부정축재한 재산을 동결 압수할 수 있는 법개정안을 제출했었다.
수사는 어떤 성역도 있을 수 없고 어떠한 대상도 예외일 수 없다. 죽은 자와 산자까지도 가리지 않는다. 결국 이 개정법안은 89년에 통과됐다. 부정축재한 재산은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이었다.
이같은 공무원 부정척결 드라이브는 이를 집행하는 정치지도자들이 스스로 청렴결백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싱가포르의 이광요는 지금껏 어떠한 부정의 소지에도 연루된 적이 없이 깨끗하고 검소한 지도자로 국민들로부터 추앙받고 있다. 그의 부친은 아들이 한나라의 최고지도자인데도 시계수리점을 계속했다. 이런 사실이 바로 오늘날 부정부패가 없는 싱가포르를 건설한 밑걸음이었다.
현재 CPIB는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부정부패 척결기관으로 국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영장 없이도 압수수색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고 있다.
CPIB는 국장,부국장,선임보좌국장,보좌국장 5명,특별수사관 41명 등 모두 76명으로 구성돼 있다. 부패방지법은 이 기구가 수사해 증거와 함께 검사에게 넘긴 사건은 어떠한 이유로든 기각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 기구 수사관들은 국장이외의 누구로부터도 명령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수사에 아무런 성역이 없고 아무런 굴곡이 있을 수 없다.
이같은 싱가포르 공직사회의 청교도적 청결성은 기업뿐만 아니라 국민에게도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예를들어 4백원짜리 주차료를 위반했을 경우 2번의 벌칙금 납부통지서를 발부한뒤 그래도 소식이 없으면 1백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3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있고 정부는 이를 과감히 집행하고 있다. 정부가 깨끗한 만큼 국민에 대해서도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교통순경에게 『봐달라』고 돈을 내밀었다가는 7년 이하의 징역이다. 따라서 싱가포르 민원창구에서 공무원에게 돈을 집어주는 것을 들었다거나 봤다는 사람이 없다. 공무원들은 술집 등 유흥업소에 가기를 삼간다. 연말연시에 친지간에 주고 받는 2만∼3만원짜리 인사성 선물도 관공서로부터 되돌아온다. 한마디로 일체 받지 않는다. 그래서 주지도 않는다. 91년말 한국대사관에서 싱가포르의 한 기관에 보낸 한국산 사과상자(10개들이)도 반려돼왔다.
우리에게는 비정상으로까지 여겨지는 이같은 싱가포르 공직자 사회의 청렴은 우리가 빨리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자각을 일깨우고 있다. 아울러 최고 정치지도자로부터 깨끗해야만 공직사회의 부패가 척결될 수 있다는 교훈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싱가포르=최해운특파원>싱가포르=최해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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