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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러 개혁의 교사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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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러 개혁의 교사로 부상

입력
1993.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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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시장경제 도입은 고통만 초래/사회보장제 뒷받침 점진개혁 이뤄야”【베를린=강병태특파원】 독일이 미국을 제치고 러시아의 시장경제개혁의 「교사」로 부상하고 있다.

독일은 고르바초프의 구 소련시절 경제개혁의 최대 지원국이자 긴밀한 조언자였다. 이는 통일에 대한 반대급부 성격도 있지만,양국의 역사적 유대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그만큼 깊은 때문이었다.

소련붕괴후 독일과 러시아의 협력관계는 크게 후퇴했다. 동독 재건부담이 있는 독일의 지원여력이 준 탓도 있지만 옐친 정권은 미국 전문가들의 권고에 따라,미국식 순수 시장경제 도입에 매달렸다. 이에 따라 독일은 옐친의 급진개혁방향에 회의적인채 개혁지원에도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을 고비로 급진개혁이 좌초 상태에 빠지면서 독일의 자문을 구하기 시작한 러시아는 최근 점진개혁 세력의 주도권 장악과 함께 급격히 독일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이같은 방향전환은 가이다르 총리 퇴진과 체르노미르딘 총리 등장 등 개혁노선 변경을 주도한 러시아 산업연맹 총재 볼스키의 발언에서 여실히 확인된다. 볼스키는 강력한 국영기업군의 대표이자 최대 정치세력인 시민동맹의 리더로 러시아의 실질적 외교실력자로까지 불린다. 그는 지난 5일 독일언론과의 회견에서 『반미 인상은 원치 않지만,미국은 러시아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가이다르 정부가 미국 전문가들의 급진적 개혁플랜을 추종한 것을 비판했다. 그리고 『러시아는 독일과의 전통적 협력관계를 다시 강화해야 한다』며 「독일통」인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곧 협력관계 강화를 위해 독일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볼스키의 발언은 의례적 수사가 아니다. 볼스키가 이끄는 점진개혁 세력의 압력에 몰린 러시아정부는 이미 지난해 여름부터 독일경제 전문가들을 초빙,미국 일변도 자세를 수정했다.

이 독일 전문가중 대표적 인물은 우리의 공정거래위원장격인 연방 카르텔 청장을 지낸 볼프강 카르데다. 독일 경제부처의 위촉을 받은 그는 베를린과 모스크바 최고회의 건물의 사무실을 오가며 정제개혁에 필요한 법률제정 작업을 돕는 등 전반적인 자문을 맡고 있다. 또한 독일 경제부 및 연구기관에 러시아경제를 분석해주고 세미나 조직 전문가 주선 등의 업무도 한다.

카르데는 러시아정부 및 의회 관계자들과의 첫 대면에서 『러시아는 독자적인 시장경제체제를 모색해야 한다』고 전제,러시아인들을 놀라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옐친 정권의 경제개혁정책을 지도한 하버드대의 제프리 삭스 등 미국 전문가들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면적인 가격자유화와 민영화 등 급진적인 순수 자본주의 도입을 절대적 명제로 제시한 것에 비하면 파격적이다.

카르데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 각국 자본주의가 여건에 따라 각기 차이점과 결함이 있는 것을 무시한 순수 자본주의 이식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수십년간 국가주도 경제와 최저복지 보장에 익숙한 러시아에 미국보다도 원론적인 자유시장 경제이념을 적용하려는 것은 잘못임을 지적했다.

이러한 독·미 전문가의 차이점은 독일 자체가 미국과는 달리 사회적 연대와 복지를 중시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란 점에서 비롯된다. 또 바로 이 때문에 러시아의 점진개혁 세력들에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볼스키는 『러시아는 동독경제체제 전환작업을 하고 있는 독일의 경험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독경제체제 전환에도 대량실업 등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실업수당 등 독일의 사회보장제도가 뒷받침돼 동독 주민들의 실질생활에는 큰 고통이 없다. 반면 시장경제 논리만을 앞세운 미국 전문가들에 이끌린 러시아의 급진개혁 실험은 일반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

러시아 폴란드 등 동구권 개혁의 자문을 도맡아 명성을 떨친 하버드대의 제프리 삭스는 러시아의 급진개혁노선 수정을 『파탄의 길을 택했다』고 신랄히 비난했다. 그러나 독일의 카르데는 『시장경제로의 길은 포도주가 익듯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일 뿐,급진적 사유화가 성공의 열쇠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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