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조류/브라질 대통령·일 가네마루·독 경제장관등/「국민힘」으로 비리 단죄/“부정만연=망국” 역사의 교훈/부패척결 지도자 의지가 중요/우리도 「부정방지위」 설치 추진온세계가 부패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각국의 정치지도자들이 부정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퇴진하거나 기소되는 등 반부패의 사회조류가 거세다.
작년말 브라질 대통령 콜로르 데 멜루가 부정축재 혐의로 탄핵소추돼 사임했고 일본 정계의 1인자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자민당 부총재가 불법 정치자금 조성사건에 연루돼 퇴진했다. 프랑스에서는 88년 대통령선거 때 이루어진 집권 사회당의 불법 정치자금 조성이 법원의 가차없는 심판을 받고 있다. 독일에서도 최근 묄레만 경제장관이 직권을 이용,사촌의 사업을 도운 사실이 폭로되면서 사임해야 했다.
이에 따라 독일에서는 내각 쇄신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고 일본에서는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연합회(경단연)가 정권교체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정치개혁과 정계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사건의 후유증은 엄청나지만 대통령이나 집권당의 비리를 철저히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은 높은 국민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며 앞으로 발전가능성을 예고하는 커다란 움직임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현직 대통령 콜로르에 대한 탄핵과 정계실세 가네마루의 퇴진이 사실상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이처럼 각국이 부패척결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부패와 특혜의 범람이 공정한 경쟁구조를 왜곡시키고 헌신의 노력을 좌절시켜 결국 사회의 정체,국가의 쇠망을 가져온다는 인식의 확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경우 대형 국책사업에서 각종 소규모 인허가에 이르기까지 유착의 구설수가 끊이질 않지만 「성역」이나 「관행」의 이름아래 부정부패가 속시원하게 단죄된 적이 거의 없다. 때문에 우리 사회의 부패는 이미 중증을 넘어섰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부패의 범람으로 국가적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져 선진국을 따라잡기는 커녕 경쟁국과 후발국에도 추월당하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김영삼 차기 대통령이 반부패를 선언한 것도 「부패방치는 망국」이라는 절박함을 인식한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또 새 정부는 부패방지위원회를 설치할 방침이다.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스위스의 국제경제연구소(IMI)와 세계경제포럼이 얼마전 발표한 「92세계경쟁력 보고서」는 한국의 종합경쟁력이 홍콩·싱가포르·대만 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에도 밀려 5위를 기록했으며 태국·멕시코에까지 간발의 차로 추격당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비단 경제보고서 뿐만 아니라 역사상 부패를 다스리지 못해 좌초한 수많은 국가들이 우리에게 부패척결의 당위성을 웅변해주고 있다.
굳이 고대 로마나 중국 왕조의 쇠망이라는 진부한 예를 열거할 필요도 없다. 30∼40년대 풍요로웠던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남미국가들과 50∼60년대 아시아의 선두주자였던 필리핀이 독재정권의 부패로 낙오한 것은 생생한 증거들이다. 또한 구 소련 등 동구국가들이 견제받지 않는 관료조직의 부패 때문에 활력을 잃고 결국 붕괴한 사실도 동일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민주주의 원조라는 영국의 선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 선거법상 후보 1인당 평균 법정선거 비용은 5백60만원으로 한정돼 있다. 후보자 1인당 20억∼30억원을 쓰는 우리 선거풍토서는 믿기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어기는 후보자는 없다. 선거전이 중앙당 차원의 정책대결 위주로 이루어지는데다 금융실명제로 돈의 유통경로가 철저히 추적되기 때문에 후보자들은 초과비용을 쓸 엄두를 못낸다. 정치의 기초인 선거가 깨끗하게 이루어지니 의정활동에 정경유착이 있을 수 없고 의회의 철저한 감시를 받는 정부 역시 깨끗하다.
독일은 지난 86년 공무원 부패 특별수사위윈회를 설치 공직관련 부정을 철저히 감시,단속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시만 하더라도 이 위원회는 지난 6년간 건설관계 수뢰사건 등 1천1백건을 적발했다. 최근의 묄레만 경제장관 사임처럼 주총리나 고위관리가 특혜시비에 연루되거나 기업으로부터 향응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고 이것이 사실로 확인되면 물러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싱가포르,부패공직자 가중 처벌/대만선 범법 총통 친인척 사형도
프랑스의 경우 루임베크라는 지방법원 판사가 88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루어진 집권 사회당의 불법 정치자금 조성사건을 집요하게 추적,당서열 3위인 에마누엘 리 하원 의장을 기소하기 이르렀다.
루임베크의 노력은 반부패여론을 불붙게 해 결국 베레고부아 내각은 75개항의 반부패법을 국회에 제출해야 했다.
미국도 클린턴 차기 대통령이 고위공직자의 기강확립을 정책 1순위중에 넣을 정도로 부패방지는 주요 쟁점이 돼있다. 클린턴의 등장으로 「로비에 의해 좌우되는 미 정치」라는 오명이 어느정도 벗겨질 전망이다.
자민당의 일당 장기집권으로 정경유착 사건이 심심찮게 터지는 일본의 경우도 민원부서 일선창구의 금품수수는 전무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경유착 사건 경우도 일본 검찰은 우리 검찰과 비교하면 훨씬 독립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때 일본 검찰도 정치권의 압력에 치욕적인 굴복을 한 적이 있다.
1954년 「조선의혹」 사건때 당시 요시다 내각은 이누카이 법무장관에 압력을 넣어 검찰이 계획하고 있던 사토 자유당 간사장의 체포청구를 무산시켰다. 이 사건으로 일본 국민사이에선 검찰 무용론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1976년 록히드사건때 동경지검 특수부는 엄청난 외압을 견디며 당시 총리 다나카(전중)를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동경지검 특수부의 명검사 가와이는 『대규모 오직사건은 일반인에게 직접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수사하는 것보다 하지않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대형부패가 만연하면 국가가 붕괴한다』고 갈파한바 있다.
최근 사가와규빈 사건의 경우 미온적인 검찰대신 각 지역의 지방의회가 가네마루의 퇴진을 촉구하는 등 국민의 비판이 부패구조에 물들어 있는 정치인들을 단죄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서방선진국과 비교할 필요도 없이 가까운 싱가포르만 보더라도 부패의 「부」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현지 대형공사를 여러차례 해낸바 있는 한국건설업체 관계자들은 『신용과 능력만 있으면 단돈 백원의 커미션없이도 융자와 관급공사를 따낼 수 있다』고 말한다.
싱가포르가 부패없는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던데는 이광요총리의 강력한 의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총리는 취임직후인 60년 『부패척결없이 국가발전 없다』고 선언,명맥만 유지하던 부패행위방지법을 실효성있게 개정하는 한편 집행기구로 부패행위조사국을 발족시켰다. 이 법의 대상은 공무원 뿐만 아니라 사기업체 임직원까지 포함됐으며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는 가중처벌 대상이 됐다. 법제정후 몇년간 가차없이 법을 적용한 결과 싱가포르는 부패없는 국가로 자리잡게 됐다.
아사이 사룡중 하나인 홍콩도 부패척결에 철저하다. 홍콩도 60년대까지만해도 부패의 수렁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70년대 들어서면서 부패일소의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은 영국 정청은 1974년 아무 역할도 못하던 기존의 반부패국,상설부패위원회 대신 반부패독립위원회(ICAC)를 설립해 부패공직자 처단에 나섰다. 위원회 검사를 선발하는데도 홍콩과 연고가 없는 영국 호주 등지에서 차출할 정도로 철저했다. 이 위원회의 활동으로 현직 검사,경찰·간부·고위공직자·변호사 등 수백명이 파면되거나 구속됐다.
대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장개석이 모택동에게 패해 중국 본토에서 쫓겨난 이유중의 하나가 측근·친인척의 부패 때문이었던 만큼 장이 대만에서 취한 첫 조치는 부패일소였다. 당시 일부 친인척이 사형당하고 수많은 고위 측근이 구속,단죄됐다. 그후 대만정부는 63년 동원감란시기 징치탐오조례 등을 제정,부패행위에 대한 처벌을 제도화했다. 형벌은 매우 가혹해 최고 사형이며 일반 부패사범은 5∼15년의 형량을 받도록 돼있다.
부패척결엔 각 나라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지도자의 의지가 1차적 요건이다. 대만의 장개석,싱가포르의 이광요가 그랬듯 우리 정치지도자들이 자신의 주변을 깨끗이 하고 강력히 대처한다면 부패지수는 빠른 속도로 낮아질 것이다.
김영삼 차기 대통령은 부패퇴치를 국정의 제1순위로 내걸어 일단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실천이 따르지 않는 선언은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없이 있어왔다. 국민들은 백마디의 「깨끗한 사회」 공약보다는 실천을 원하고 있다.<이영성기자>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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