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 아침은 으레 음악으로 열린다. TV방송마다 정월 초하룻날 첫 새벽의 첫 프로는 모두 음악회다. 음악말고 달리 마땅한 개년선언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본시 막은 음악으로 오른다.올해의 1월1일 KBS 1TV는 새벽 5시 평일보다 1시간 앞당긴 방송개시와 함께 「신년 영상가곡」 프로로 성악가들이 야외에서 부른 우리 가곡들을 방영했다. MBC는 1일 아침 6시 「신년음악회」로 방송을 시작하면서 작년 11월 내한공연한 러시아 국립교향악단의 연주를 재방했다. 그리고 2일 아침 6시에도 「신년음악회」를 계속하여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주었다. SBS 역시 1일과 2일의 아침 6시 프로가 「신년음악회」였고 이를 모두 우리 가곡들을 내보냈다.
KBS 1TV는 새벽 프로와 별도로 1일 하오 6시30분부터 KBS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신년음악회」를 마련했다. 레퍼토리는 구노의 「장엄미사곡」 베버의 「무도에의 권유」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 등이었다. 세 방송의 음악회는 모두 미리 녹화된 것이다.
TV의 여러 연시음악회중에 흥미로웠던 것은 예년처럼 KBS 2TV가 2일 하오 3시20분부터 녹화중계한 빈 필하모니의 신년음악회였을 것이다. 빈에서 1일 아침 열린 이 음악회에서는 리카르도 무티의 지휘로 라너와 요한·요제프 슈트라우스 형제의 왈츠곡들외에 앙코르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연주되었다.
빈의 새해는 전통적으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곡으로 밝는다. 해마다 12월31일 자정 빈의 상징인 성 슈테판 성당의 종이 울리면 TV와 라디오에서는 일제히 이 곡이 울려나온다. 날이 밝으면 신정 아침의 11시 빈 필하모니의 정기연주회장인 뮤직페라인잘에서는 빈 악우협회 주최로 신년음악회가 열리고 연주곡목에는 반드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끼인다. 이 음악회는 전유럽과 미국의 TV에 위성으로 생중계되어 7억 인구가 동시에 손에 손을 잡는 원무곡으로 새해를 축복한다.
1866년 독일연방의 주도권을 둘러싼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의 전쟁에서 오스트리아가 패전했다. 오스트리아는 굴욕과 실의속에 1867년을 맞았다. 의기소침해진 국민들의 기분을 일신시켜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야 했다. 이를 위해 작곡된 음악이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다. 그 이래 이 곡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제2의 국가」로 불리며 신년뿐 아니라 나라의 큰 행사 때마다 반드시 연주된다.
빈에서는 1일 아침의 신년음악회외에 이날 밤에는 빈 아카데미(음악학교)의 콘체르트하우스에서 따로 음악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연주되는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곡이 연말 송년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로 되어있지만 「환의의 송가」 합창이 감동적인 이 교향곡은 새해를 환희로 맞게 한다.
우리나라의 새해맞이 음악회중 공연장에서 연주되는 것으로는 정부 주최로 매년 1월 하순에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되는 것이 있다. 89년부터 이어온 이 「신년음악회」는 그나마 올해부터는 중지된다고 한다. 관주도의 음악회가 크게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실 91년부터는 공연횟수를 한회 늘려 일반인들의 입장을 허용했다고는 하나 요인용이라는 인상을 씻을 수 없었고 양악과 국악을 섞은 곡목도 별다른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년음악회는 해가 바뀐다는 신호로만 열리는 것이 아니다. 그 음악이 시보의 시그널뮤직 정도에 그쳐서는 안된다. 묵은 해의 고뇌를 씻어내고 새로운 해의 희망과 생기를 심어주는 의식이어야 한다. 아무 음악이나 TV에서 녹화로 내보내는 것이 신년음악회일 수 없다. 우리의 심서를 작약시킬 우리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나 「환희의 송가」는 없는가. 우리 음악은 가곡 뿐이고 관현악은 외국곡 뿐인가. 있다. 안익태의 「코리아환타지」(한국환상곡)가 있다.
1월1일 아침 우리의 여러 교향악단이 합동으로 유수한 합창단들을 총등장시켜 예술의 전당 같은데서 이 곡을 대대적으로 연주하자. 그 실황을 TV로 전국에 생중계하자.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나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은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리자. 식전에서 부르는 애국가가 약식이라면 「코리아환타지」는 정식 애국가라 할만하다. 한해 한번이라도 그해 첫날에 애국가의 전곡을 듣자. 이 곡의 후반부에 나오는 애국가의 대합창에 단심이 기립하지 않을 우리나라 국민은 없을 것이다. 이 합창은 우리 모두를 합창케 한다. 이 감동을 새해 아침에 함께 나누자. 애국의 열정은 모든 국민의 희구와 기원을 뜨겁게 데워줄 것이다. 신년음악회를 조국찬가로 맞는 새해 아침은 참으로 눈부시지 않겠는가.<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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