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산업도 몸통만 비대/“피와 신경이 흐르지 않는 기형”/공정 하나 하나 마다 로열티/범용 제품 생산 그나마 다행/“기초기술신제품 개발 2원화 바람직”중동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비닐하우스 농작물 재배가 시험중이다. 일본이 개발한 습기 흡수 비닐의 실용화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듀퐁은 깨지지 않는 대리석을 개발해 상품화했고 인공뼈를 만들어 부상자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고 있다. 지난해 유럽의 자동차 전시회에는 쇠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든 일제 자동차가 출품돼 관심을 집중시켰다. 일본은 최근 국민학교 교과서를 플라스틱으로 남들었고 멀지 않아 신문까지 플라스틱으로 만들 것이라고 한다. 물론 썩는 플라스틱이다.
원유를 정제해 만든 유화제품이 2차 3차 가공되면서 산업사회를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열어가고 있는 선진 석유화학 공업의 모습들이다.
앞으로의 산업은 석유화학 공업을 얼마나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거의 전 상품에 석유화학 소재가 사용되고 있으며 상품의 경쟁력은 석유화학에서 얼마나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느냐에 달려 있다. 칼로 긁어도 흠이 생기지 않는 전화기,땀은 배출하고 온기는 보호하는 섬유,충격을 전량 흡수하는 범퍼,식물처럼 분해되는 바이오 플라스틱,나무촉감의 플라스틱 건축자재.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 이들 상품들은 모두 석유화학 산업의 산물들로 선진국에서는 상당부분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는 그러나 아직 이같은 소재들을 만들 엄두를 못내고 있다. 시중에 나와있는 숨쉬는 옷 등은 모두 수입원단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품질 세계적 수준,생산능력 세계 5위. 겉으로 드러난 우리나라 석유화학 산업의 현 위치다. 경제 개발 계획 초창기에 울산에 공단이 조성되고 전남 여천과 충남 대산에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면서 국내 석유화학 생산 능력은 에틸렌 기준 연 3백25만5천톤으로 세계 5위국으로 자리 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독일 러시아 다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은 안타깝게도 피도 신경도 흐르지 않는 몸통뿐인 산업이 되고 말았다. 머리도,손발도 없기 때문에 혼자서는 움직일수 없는 기형 산업이 된 것이다. 공정의 변화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는 기초기술을 전혀 갖지 못하고 있고 1차 가공된 유화제품을 2차 3차 응용해 정밀화학·신소재 개발로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석유화학 공업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한번 시설을 갖추어 놓으면 쉽사리 뜯어 고칠 수 없는 장치산업을 뿐만 아니라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기술집약 산업이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그러나 지금까지 기초기술의 기반을 갖추지 못한채 선진국의 제조기술을 몽땅 들여와 단순히 중간재만을 만들고 있다. 지난 68년부터 91년까지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도입한 해외 기술은 모두 2백95건. 나프타를 들여와 1차 가공한 범용제품을 양산하면서도 매공정마다 모두 해외기술에 의존해 왔다.
석유 화학산업이 기형이된 것은 선진국들과 비교도 안되는 연구 개발비 투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의 몬산토,독일의 훽스트,일본의 미쓰이 석유화학 등이 모두 매출액 대비 7%내외를 연구개발비로 투자하고 있는데 비해 범용제품의 양산에만 급급한 국내기업들의 매출액대비 연구 개발비는 1.5%대에 그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우리보다 불과 10여년 앞서 석유화학산업을 시작했으면서도 구미 기업들의 기초기술을 들여와 재빨리 특유의 실용기술로 발전시켰다. 현재는 오히려 일반 산업용 분야에서 구미 기업을 앞지르고 있다고 평이다.
석유화학 산업은 기술개발에 대한 정부와 기술에 따라 우리나라의 전체 산업 수준을 한단계 높이느냐,이대로 몸통뿐인 기형산업으로 남아 있느냐를 결정짓는 시금석과 같은 산업이다. 옛 소련은 분자결합의 연구로 고압에 견디는 특수 유리를 세계 처음으로 만들어 놓고도 응용기술로 발전시키지 못해 산업화에 실패했다. 반면에 일본은 기초기술 없이 세계 최고의 유화 가공기술을 갖추어 신소재를 속속 개발해 내고 있다.
그 동안 양적 팽창에만 매달려온 우리 석유화학 산업이 질적으로도 고도화되려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복합수지 등의 신소재 개발과 첨단 의약품·산업용 대체소재의 실용기술개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다행히 신소재와 정밀화학 분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범용제품의 국내 생산능력이 자급체제를 넘어 수출여력까지 갖췄다. 범용제품의 품질도 높다. 필요한 것은 기술 개발에 대한 전략과 전술이다. 전문가들은 업계는 신소재 등 차세대 석유화학 제품의 개발에 집중하고 정부는 선진국들이 이전을 기피하는 분자결합기술,공정 개발기술 등 기초분야에 주력하는 전략적인 기술개발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이종재기자>이종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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