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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선양노」 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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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선양노」 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3.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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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밝았다.많은 사람들이,올 새 해에는 많은 것이 달라질 듯이 말을 한다. 새 해 신문들은 그런말로 가득하다.

그러나 새 해 신문에서, 내 눈에 박힌 기사는 따로 있다. 『쌍둥이노파 생활고 자살』이란 외줄 표제가 달린 기사(1·1 한국일보 23면)다. 사연인 즉,사고무친인 81살의 쌍둥이 할머니 자매가,세 밑 외로움을 못이겨,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기사를 보건대,두 할머니는 동에서 나오는 한 달 8만원의 생활비와 쌀·보리 25㎏으로 연명해 왔다. 남긴 것은 장례를 부탁하는 유서 한통과 현금 2만3천5백원 뿐이다. 새 해 아침 기사 치고는 너무나 처참하다.

지난 연말연시에 걸쳐,신문들은 『새 해에는 이렇게 달라진다』는특집을 꾸몄다. 그중 노인복지에 관한 것은 다음 두 가지다.

하나는 올부터 국민연금제도에 따른 특례노령연금이 지급된다는 것이다. 대상은 국민연금에 5년 이상 가입하고 나이 60을 넘은 퇴직자. 그러나 실제의 수혜자는 고작 2만4천명,연금액은 퇴직 때 월소득 2백만윈이던 사람이라야 월9만6천원이다. 달라졌다고 해도 크게 생색날 것은 없다.

다음은 70세 이상의 생활보호 대상자에게 지급하는 노령수당을 50% 인상한다는 내용이다. 대단한 듯 하지만,인상된 실제 금액은 월1만5천원. 지급대상자는 70세 이상 인구1백35만명 중 겨우 18만1천명.

이런 것이,세계 속의 「경제10강」을 기약한다는 우리나라,선진국형 고령화사회로 접어 들었다는 우리나라 오늘의 노인복지다. 65세 이상의 노령인구가 2백30만명이나 되지만,그 중 사회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이 너무 적고,그 나마의 혜택은 너무 박하다. 앞의 「쌍둥이할머니」는 이틈에서 생긴 「희생자」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더 많은 「쌍둥이할머니」가 생길 것도 틀림이 없다.

「쌍둥이할머니」를 생각하며,재정사에 나오는 톤틴(톤티식)공채,톤틴연금이란 것을 떠 올렸다. 17세기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14세의 재무관이던 로랜초 톤티가 창안한 제도다.

그 제도를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가령 금년 60세인 사람 1만명이 한 조가 되어,액면 1백만원,이율 10%의 톤틴공채를 샀다고 치자. 원금 총액은 1백억원,한 해 이자 10억원이 된다. 이 10억원을 가입자의 수로 나눈 금액이 가입자 각자의 한해 연금이 된다. 다만 사망한 가입자는 연금수령권을 상실하며,가입자 전원이 사망하면,원금은 국고로 귀속한다.

따라서 이 경우의 가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첫 해 연금은 10억원÷1만명=10만원이다. 다음 해에는,한해사이 사망자가 생긴만큼 가입자가 줄 것이므로,연금은 10만원+알파가 된다. 이 알파는 해가 갈수록 커진다. 가입자가 1천만원씩,혼자 남았다며 10억원이다.

이렇게 되면,장수는 그야말로 미덕이 된다. 노인은 천덕꾸러기가 아니라,집안의 보물단지가 된다. 경노·효도가 절로 된다. 나라 재정에 보탬이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 방식을 약간 변형하면,여러가지 활용도 가능할 것 같다.

예컨대,공무원이 정년퇴직할 때,정부가 특별보너스를 갹출하여 톤티식 공영기금으로 설정하면 어떤가. 공무원의 연금 갹출금 일부를 톤티식으로 전환하면 어떤가.

또 톤티식 경로보험은 어떨가. 돈티식 동갑계도 그럴듯 하지 않은가.

차라리 어떤 연령에 이른 이들에게,정부가 장수축하금을 출연하여,톤티식 장수연금을 80살로 잡는다면,지금의 79세 인구 6만명에 한 사람 10만원씩,60억원이면 족하다. 그것도 정부출연은 장부상의 조치로만 가능한 것이니,실제 부담은,이율 10%로 쳐서,한해 6억원 뿐이다. 마음을 크게 먹고,지금 80세 이상의 노인 전원(28만7천명)을 대상으로 10만원씩 출연해도,장부상의 기금 2백87억원,한 해 부담 28억7천만원이면 된다. 그 효과로 크게 일어날 경노·효친의 기풍을 생각하면,투자가치는 충분하지 않은가.

톤티식 운운의 얘기는 새 해의 춘몽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노인복지 하나만 해도,기발하게 보일만한 발상의 전환,통 큰 구상과 과감한 실천 없이는 해결이 안된다. 그래야 할만큼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복지시책은 전개가 너무 더디고 고식적이었다.

새 해에 많은 것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런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 32년만에 맞는 「문민대통령」을 향한 달라짐의 기대는 그래서 더 크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효자대통령」임도 잊지 않는다. 지난 선거에 국민들은 「문민」만이 아니라,「효자」를 함께 선택한 것이다. 「문민」으로 청와대를 뜯어 고치고,정부를 개편하는 등의 개혁도 중요하지만,「효자」로서 나라안에 그늘진 데가 없게 하는 개혁은 더욱 중요하다. 그가 정치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면,그것은 「쌍둥이 할머니」같은 이들을 보살필 「생활정치」가 아쉽기 때문이다.

일찍이 맹자는 백이·숙제와 강태공의 고사를 들어 왕도정치의 요체를 말했다.

『백이가 주(은은 폭군)를 피하여 북쪽 바닷가에 살았더니,(주의)문왕이 일어남을 듣고 말했다. 「어찌 그에게 의지하지 않으리오.서백(문왕)이 늙은이를 잘 길러주는 사람(서백선양노)이라던데­」 태공도 주를 피하여 동쪽 바닷가에 살았더니,문왕이 일어남을 듣고 말했다. 「내가 어찌 그에 의지하지 않으리오. 서백이 늙은이를 잘 길러 주는 사람이라던데­」이처럼 천하에 선양노하는 사람이 있으면,어진이도 그를 스스로 의지할 곳으로 여긴다.

아마 「효자대통령」은 「선양노」의 뜻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새해 달라짐에의 기대를 「선양노」 「선양노」로 요약해 본다. 달라짐의 본뜻이 「약한 자」를 보살핌에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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