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조선국”… 꿈에서 깨자/일 기술의 30% 수준… 핵심부품 거의 의존/자동화등 확충없인 후발국에도 먹힐판넓은 도크마다 가득찬 산더미같은 선체,하늘을 찌를듯한 초대형 크레인,진수식을 앞둔 거대한 선박.
조선소는 우리 경제의 두얼굴이다. 백사장 뿐인 허허벌판에 들어선 세계 최대의 조선소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발전을 상징하는 과거의 얼굴이다. 목선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우리나라가 세계2위의 조선국이 됐다는 사실은 자랑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조선소는 또한 겉으로만 번드르하고 덩치만 컸지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해 주저앉는 우리 산업의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낙후기술의 상징이다.
방금 도크를 빠져나온 총톤수 25만톤급의 초대형 유조선(선가 1억달러 상당)은 외양만 보면 자부심을 갖게 하지만 구석구석을 뜯어보면 「빛좋은 개살구」임이 드러난다. 선박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기술이 모인 곳이 기관실과 조타실이다. 기관실에는 배의 동력기관인 엔진이 자리잡고 있고 조타실에는 각종 통신장비와 자동화설비들이 들어차 있다. 선박의 뇌에 해당되는 조타실의 경우 눈을 씻고 사방을 둘러봐야 「메이드 인 코리아」는 찾을 수가 없다. 대부분이 일제이고 간혹 미제나 독일제 노르웨이제가 눈에 띈다. 국산화율이 80%에 육박한다는 엔진의 경우도 주요 핵심부품은 어김없이 외제이다.
속알맹이는 거의 외제가 차지하고 있고 빈껍데기만 우리가 만든 셈이다.
선박원가의 20% 정도를 엔진과 통신장비·자동화설비가 차지하고 나머지는 기자재와 인건비가 차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철판을 자르고 조립하고 용접하고 페인트칠하는 일을 과소평가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속알맹이를 외제에 내주고 껍데기 공사에서도 제대로 이익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인은 기술력의 열세 때문이다. 싼 인건비로 이익을 챙기던 때는 지났다. 조선산업이 관련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첨단기술산업으로 탈바꿈,기술이 뒷받침되지 않고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게 돼있다. 지난 90∼91년 우리나라 조선업체의 수주물량이 전세계 발주량의 25%를 넘었던 것이 지난해엔 14.8%까지 하락하며 사상최악의 수주실적을 올렸다. 이는 전반적으로 신조선 발주량이 감소추세를 보인 탓도 있지만 기술력의 열세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믿기 어렵지만 우리 조선사업은 경쟁국에 비해 어느 하나 나은 분야가 없다. 싼 임금으로 버티던 시절은 끝났고 이제는 건조단가가 오히려 일본보다 5∼10% 높다. 일본이 우리보다 인건비가 비싼 대신 생산성이 우리나라의 3배나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과 경쟁하려하니 우리나라는 이익을 줄일 수 밖에 없다. 일본 조선업체의 이익률이 20% 이상인데 비해 우리나라 업체들의 이익률은 5∼10%에 불과하다.
생산성이 높다는 것은 근로자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물론,기술수준과 자동화수준이 우리보다 월등히 앞섰다는 것을 뜻한다. 설계에서 생산 및 선박운영에 이르기까지 우리업체의 전반적인 기술수준은 일본의 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기술이 월등히 앞선 일본은 여기에다 각 분야에 걸쳐 엄청난 자동화를 실현하고 있다. 일본 조선업체의 공정별 자동화율을 보면 설계 80%,절단 90%,조립 50%,탑재 20%,도장 20%에 이르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자동화율은 대략 일본의 4분의 1 수준이다. 일본은 이같은 높은 기술수준과 자동화율로 생산원가의 절감은 물론,운영비 절감에도 성공해 우리나라가 어느정도 경쟁력을 갖추었다는 일반화물선과 유조선에까지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우리나라 조선사업은 일본에 뒤처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유럽국가와 중국에도 맹렬한 추격을 당하고 있다. 서유럽국가는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잃었던 경쟁력을 회복,수주물량을 확대하기 시작해 드디어 지난해 9월말 현재 2백11만5천톤을 수주,우리나라 지난해 연간 수주물량(1백64만3천톤)을 앞질렀다. 중국은 저임금을 바탕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지난해 상반기 3%에 불과했던 수주비중이 하반기에는 10%로 뛰어올랐다.
기술이 취약한 우리나라 산업이 선진국에 밀리고 후발개도국의 추격으로 위기를 맞고 있듯 기술이 빠진 조선산업이 좌초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조선은 기술개발을 외면하고 싼 임금에만 매달려 이익 따내기에만 몰두해온 우리 수출산업의 전반적인 특징을 상징적으로 압축해놓은 업종이다.<방민준기자>방민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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