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통해 국민심판도 끝났고 해도 바뀌었으므로 무엇인가 크게 달라져야 한다는게 국민적인 바람이고 공론이다. 그런데도 지난해에 이미 국민들간에 「임기말」을 이유로한 거부감이 일었던 고속철도 등 몇가지 대형 국책사업 결정을 놓고 새해들자마자 왜 왈가왈부하는 소리가 다시 들리는지 모르겠다.6공때 거론되고 성사를 추진했던 사업이니 만큼 결자해지의 정신에 따라 임기가 하루라도 남아있는 동안 서둘러 매듭지어야 한다는 단순논리가 일응 나올 수는 있다. 하지만 6공 정권의 잔여임기를 50여일 남겨두고 있는 이 시점까지 결정을 미뤄왔으면 이미 그 시기를 놓쳤다는게 올바른 판단이 아닌가 싶다.
이같은 판단의 밑바탕에는 몇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가 도덕성의 문제이다. 국민들이 감지하다시피 대형 국책사업에는 국가적 이해 뿐 아니라 자칫 큰 이권이 달려있다는 구설수가 따른다. 앞서 제2이동통신 사업자선정을 놓고서도 여론이 물끓듯 했었기에 결국 최종 사업자선정 결정을 번복,다음 정권으로 미루기로 했던게 아니었던가. 이동통신사업은 정부의 거액 재정투자사업이 아닌데도 그처럼 의혹의 소리가 높았는데 10조원 이상이 드는 엄청난 경부고속철도의 차종선정을 임기내 선정키로 했다는 발표가 왜 문제가 되고 있는지 우선 도덕적 차원에서 야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이들 대형 국책사업이 비록 6공에서 발의되고 추진되었다지만 그동안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민주국가에서 합의없이는 결정이란 없는 법인데,해를 바꾸며 또 다시 국민적 합의절차 없이 서둘러 결정을 내리려는 것은 국민정서에도 어긋난다 하겠다.
국민적 합의속에서 비로소 문민정부가 서는 마당에 합의도 안된 계획을 짧은 임기말에 서둘러 결정하려다간 더 큰 국민적 반발을 사기 십상인 것이다. 또 정권이란 어차피 때가 되면 바뀔 수 밖에 없지만 나라살림이나 민생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정권이 바뀐다고 임기 마지막날까지 세상이 끝날세라 모든 현안결정을 서두르다간 부작용이 클 수 밖에 없다.
세번째 이유는 대형 국책사업의 시행주체 문제이다. 정권이 들어서면 선거 때 공약을 마땅히 추진,임기말까지 끝내는게 바람직하다. 그런데 임기말에 결정만 하고 그 추진이나 시행결과에 책임을 못질바에야 차라리 시행주체인 다음 정권에 결정권마저 승계해 책임정치·책임행정을 구현하는게 도리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5공 말기때의 섣부른 결정들을 기억하고 있다. 제2민항이 구설수속에서도 결정이 강행됐고 당시 큰 이권으로 꼽혔던 골프장 허가가 무더기로 쏟아졌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떠한가. 제2민항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신설 골프장들은 환경파괴의 거센 비판을 받으면서 경영면에선 연쇄 부도사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바야흐로 경제전쟁의 시대이다. 이념대립이 빠진 정치의 영역은 경제와 행정이 집중되게 마련이다. 국책사업은 새 정권이 달라진 환경속에서 새롭게 판단·시행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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