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수 없는 문제들93년은 전후 반세기의 국제 정치사에 본질적인 전환점을 기록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러한 예측은 전후 40수년동안 국제사회에서 익숙했던 관행과 법칙으로는 풀 수 없는 숱한 문제들이 93년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것이다.
우선 93년에 어떤 형태로건 귀결점을 찾아야될 문제는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 붕괴이후 나타난 일련의 지역분쟁이다.
유고연방의 해체현상이 빚은 세르비아 분쟁,인종·종교적 분쟁의 불씨가 언제 다시 타오를지 알 수 없는 옛 소련 판도안의 중앙아시아가 화산지대라고 할 수 있다. 또 모처럼 시작된 이스라엘과 아랍의 평화협상도 유산될 위기감이 짙고,이라크가 여전히 불씨로 남아있다. 비극의 땅 소말리아도 올해에는 안정적인 질서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동남아에서도 유엔평화유지군이 개입한 캄보디아 내전이 있다.
이러한 일련의 지역분쟁들은 전후 40수년동안 익숙했던 관행과 법칙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분쟁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세계의 경찰관을 떠맡았던 초강대국의 일방적 개입으로 해결할 수 없는 탈냉전시대의 새로운 분쟁이다. 유엔을 통한 다원적인 국제협력의 비중이 높아가는 이유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최대의 문제는 러시아가 될 것이다. 러시아는 한달평균 30% 이상,지난 한햇동안 1천%나 뛴 초인플레속에 불안한 개혁보수 연립상태에 있다. 옐친 대통령 정부는 올해부터 산업생산이 성장국면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지만,시민동맹을 주축으로 하는 보수파의 압력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12월 급진개혁파 가이다르 총리의 퇴장이후 개혁스케줄의 시간표 변경이 불가피해진 러시아가 안정된 개혁노선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93년 국제사회 최대의 숙제가 될 것이다.
○미국·일본의 의도
93년이 국제정치사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전망은 그러나 90년대들어 표면화한 지역분쟁의 현안보다 더 깊은데에 뿌리가 있다. 그것은 미국이 냉전 종반을 담당했던 공화당 정권을 청산했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냉전시대 두 초강대국은 이제 실질적인 「냉전후 체제」의 시대에 들어서게 된 것을 뜻한다. 냉전후 체제가 어떻게 짜여질 것인지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지만,거대한 새로운 흐름은 이미 표면화하고 있다.
오는 20일 백악관에 들어갈 미국의 대통령당선자 클린턴은 지난 12월12일 『일본과 유럽 등 경제 초강국들과의 경쟁에서 미국이 필승하기 위한 전략을 개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새로운 자유무역 질서를 겨냥하는 우루과이라운드도 이달 15일을 협상마감으로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공산체제의 몰락에 이어,다시 말해서 동서 이데올로기 냉전의 해체에 이어 세계는 이제 「경제냉전」의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끼리의 「자본주의 냉전」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국제질서의 새로운 균형체제를 요구하는 움직임도 경제냉전으로의 장면전환과 관련된다. 독일과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를 요구하고,특히 일본은 아시아 안보협의체 구성을 오는 7월께 구체화할 작정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의 군비축소 이후의 공백을 일본의 이니셔티브로 메우자는 속셈이다. 일본의 역할분담은 클린턴 대통령당선자도 지지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일본의 발걸음은 올들어 더욱 빨라질 것이다.
○새 환경에 눈떠야
세계적인 냉전구조의 와해와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상태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그 대부분의 원인은 냉전을 내재화하고 있는 북한의 체제에 있다.
그런 한편에서 옐친 대통령은 한국을 가리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러시아의 주도적 파트너』라 했고,북한과의 군사동맹 청산을 못박았다.
러시아와 비교한다면 중국은 북한에 대한 기득권을 고수하면서 우리측과 교류관계 발전을 꾀하는 「양다리 걸치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2월 옐친 대통령을 맞아 러시아와 군사관계를 포함해 광범한 협력관계 발전에 합의한 사실은 우리의 관심을 끌 중요한 움직임이다.
한반도 주변의 동북아에도 새로운 균형관계 형성을 겨냥한 줄다리기의 탐색이 시작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그리고 경제냉전시대의 문턱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경제적 활력이다.
일본이 자그마치 1천억달러의 국제수지 흑자(92년)를 올리고,중국이 12%의 고도성장을 기록하는 등 동북아 각국이 뛰고 있는 판에 「지렁이」로 주저앉은 우리의 성적표가 문제다.
또한 러시아·중국·일본 등 새로운 주요 파트너와의 관계를 우리의 국제적 행동목표에 어떻게 이용하느냐하는 새로운 문제의식에 눈떠야 한다.
무엇보다도 93년은 워싱턴에 새 행정부가 들어섬으로써 국제적인 생존의 법칙이 달라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93년은 「자본주의 냉전」 또는 「경제냉전」시대의 원년이 될 것임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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