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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령 닭띠/1885년 을유생 전대풍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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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령 닭띠/1885년 을유생 전대풍할머니

입력
1993.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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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아홉번째 맞는 닭의 해로구먼”/며느리등 가족 5명도 같은띠/정읍서 나서 한평생 거주/기력여전… 새벽부터 일손『아홉번째 닭띠 해라니,아이구 목숨이 모질기도 하지』 1백8세로 계유년 새해를 맞은 우리나라 최고령 닭띠인 전대풍할머니(전북 정읍군 정우면 화천리 덕성마을)는 고령이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한 모습으로 이른 아침부터 일손을 놀린다.

전 할머니는 전국 1백세 이상 장수노인 가운데 3명 뿐인 을유년 닭띠생이지만 생일이 정월 초이틀로 가장 빨라 최고령 닭띠 할머니인 셈이다. 또 서울 상암동의 1백13세 최장수 박공순할머니로부터 따져도 11번째의 장수할머니다.

1885년에 태어난 전 할머니는 아홉살 때 정읍에서 일어난 갑오 동학혁명을 비롯,강술국치,기미년 3·1운동,8·15해방,6·25와 4·19 등 격동의 근·현대사를 겪어왔지만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환갑 때인 45년에 5세 연상의 남편 김동술씨를 먼저 저 세상에 보낸 것과 5년전 외동딸을 언 땅에 묻은 일이다.

『남들은 내 딸이 82세로 장수했다고들 하지만 자식을 먼저 보내는 에미 마음은 그게 아니야. 아이구 어서 빨리 죽어야지 내가』 고희를 넘긴 외아들 환섭씨(74) 내외에게 자꾸 짐스러워 보여 한살을 더 먹는게 쑥스럽다는 것이다.

무남독녀였던 전 할머니는 열일곱에 묘역수 마을에서 인근 덕성마을 도강 김씨네로 시집온 이래 단 한번도 이곳을 떠난 적이 없다. 6마지기에 불과한 자갈논에 의지하며 아들 딸 남매를 길렀고 친손주만 7명에 증손녀도 셋이나 얻었다. 외손자 외손주까지 합치면 직계가족이 30여명에 이른다.

『얼마나 먹고 살기가 힘들었으면 밭전씨 성밑에 이름을 대풍이라고 지었겠습니까』

자신도 기력이 쇠한 노인축에 끼지만 어머니앞에서는 여전히 어린애 취급을 받는 아들 환섭씨가 말을 거든다.

전 할머니는 유난히 닭띠와 인연이 많다. 며느리 허길옥씨(72)도 신유년 닭띠생이고 손자 손자며느리까지 합하면 모두 5명이 닭띠이다.

3남4녀 친손자들은 모두 장성해서 전주 등 대처로 나가 살고 있고 명절이나 돼야 병아리가 어미닭 찾듯 모두 모여든다.

최근 몇년새에는 마을앞 정자나무 밑에서 말동무를 해주던 노인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 전 할머니는 더 쓸쓸해졌다. 손주들이 십시일반으로 보태주는 생활비로 벼지푸라기로 불을 때던 온돌방을 기름보일러로 바꾼뒤로는 노인네들끼리의 생활에 별 불편은 없다.

전 할머니는 안경도 쓰지않고 음식도 잘 먹는 편이다.

『어려서부터 아무거나 잘 먹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농사를 해온게 보약이었던 것 같아』 살림이 어려워 하나뿐인 아들을 학교문턱에도 못보낸게 한이었는데 다행히 손자들이 모두 대학교육을 마쳤다.

이번 14대 대통령선거 때도 며느리와 함께 택시를 대절,10여리 떨어진 회룡국교에 나가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를 투표를 했다.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장수노인으로 선정돼 시계·인삼 등을 선물받기도 했는데 이번 김영삼당선자는 무슨 선물을 보내올지 궁금하다고 한다.

『제발 새 대통령은 우리같은 농투성이들이 걱정없이 살 수 있게 거 우루과이라운든지 뭔지하는 잡것들을 농민편에서 해결해주었으면 제일 좋겠어』

전 할머니의 새해 소망은 이제 20여호도 안될 만큼 쇠락한 덕성마을이 40여호가 넘던 옛날처럼 되살아났으면 하는 것이다.<정읍=여동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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