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부」 탈피 「정책보좌」로 전환해야/청와대/「힘의 논리」 청산 민의 대변장으로/국회/탈권위주의·새로운 관료상 기대/행정부▷청와대◁
「청와대」하면 누구나 권력을 생각하게 되고 청와대 비서실은 막강한 권부로 비쳐지는게 우리 현실이었다.
대통령 중심제하에서 국정의 최고책임자이자 권력의 중추인 대통령의 통치보좌기구인 청와대가 권부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기능과 역할 그 자체가 권력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는 얘기이다.
더구나 3공과 5공중 역대 군사정권의 권위주의 통치가 청와대를 다른 국가기관의 권한을 절대적으로 압도하는 권부로 자리잡게 했음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6공정부가 권위주의 불식을 내세워 청와대의 위상에 어느 정도 변모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나 권부의 이미지가 완전히 탈색됐다고는 할 수 없다.
오는 2월25일 김영삼정부의 출범과 함께 청와대의 기능과 위상도 문민시대에 걸맞게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당위론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은 입법 사법 행정과 관련한 모든 보좌기구를 갖고 있는데다 공직자에 대한 사정기능과 공직자 임면에 필요한 심사기능까지 갖고 있어 권한이 막대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내각을 비롯,정부부처의 업무를 「조성」하는 기능도 지니고 있어 사실상의 소내각 역할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기능 및 역할과 함께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면서 대통령을 수시로 만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위상이 자칫 부정적으로 비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3공 시절엔 최고 통치자가 청와대 비서실의 절대권한 행사를 조장한 측면까지 겹쳐 청와대가 정부안의 정부역할을 한다는 지적을 낳았었다.
5공 때는 3공에 비해 절대권한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대통령의 보좌기능을 넘어 정치·행정의 상당부분을 장악했던게 사실이다.
6공 들어서는 3공이나 5공에 비하면 정치·행정의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비서실 본연의 보좌 및 참모기능만을 수행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6공하에서 대통령 비서실의 참모기능을 넘어선 월권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6공 초기 신설된 정책보좌관실이 북방정책을 주도,외무부 등 관련부처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거나 공안정국을 청와대가 주도하고 있다는 야당의 공격과 비난도 이 때문에 나온 것이다. 정상외교는 늘 청와대가 독자적으로 추진한다는 행정부쪽의 불평이 근거없는게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볼때 문민시대를 맞아 청와대 비서실의 새 위상정립의 길은 최고 통치자에 대한 정책보좌라는 본연의 기능으로 돌아가는데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즉 청와대 비서실이 모든 중요정책을 결정,추진하는 실질적 결정권자의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이다.
청와대 비서실의 정부안의 정부역할을 수행하려할 때 「비서정치」의 폐해가 나타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때마침 김영삼 대통령당선자는 문민정부의 위상과 성격에 맞춰 청와대 비서실의 기구와 기능을 전면 재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비서실의 기능중 내각과 중첩된 부분을 내각에 되돌려주고 비서실의 기능과 역할의 축소를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역대 정부의 청와대 비서실 기능강화가 내각의 일관된 정책추진을 어렵게 했다는 점을 감안,내각이 소신을 갖고 정책을 수행해가도록 하겠다는 배려도 보인다. 그러나 기구와 기능의 축소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게 아니다. 청와대의 주인인 대통령과 구성원들이 청와대 비서실을 어떻게 운용하겠다는 「의지」가 더욱 중요할 것이다.<최규식기자>최규식기자>
▷국회◁
문민시대에 가장 큰 위상변화가 예상되는 곳은 역시 민의를 직접 대변하는 국회라 할 수 있다.
문민이라는 말 자체가 뜻하는 바와 같이 문민시대의 근원적 힘은 바로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의 선택에 의해 구성된 국회는 과거 어느 대통령시절보다 막강한 위력과 권위를 과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민시대 국회의 달라지게 될 모습은 무엇보다 힘의 논리,수의 논리에서의 탈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과거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된 국회의 모습은 날치기와 몸싸움,그리고 끝없는 파행과 공전의 악순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같은 부정적인 국회상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어느 한쪽에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까지 파행국회의 계기를 제공하고 여야 대립의 골을 심화시킨 악역을 주로 집권여당이 담당해왔다는 사실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 의정사에서 항상 다수당의 위치를 차지해온 집권당은 여야간 입장 차이가 현격하거나 정치적으로 미묘한 사안에 대해 끈질긴 대화와 타협보다는 다수의 힘을 무기로 한 밀어붙이기식 국회운영을 되풀이 해왔다.
야당이 수적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국회를 볼모로 극한 투쟁을 벌인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의 파행국회는 대체로 집권여당의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따라서 문민시대에는 우선 이같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회상의 일신되어야 한다고 정계의 뜻있는 인사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김영삼당선자가 바로 이러한 「수의 논리」가 갖는 폐해를 직접 체험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정치권의 기대는 단순한 문민시대의 「당위성」을 넘어서고 있다.
문민시대에 걸맞는 또다른 국회상은 행정부를 적절히 견제하는 명실상부한 3권 분립의 한 축으로서의 위상확보이다. 그동안 집권당은 국회내에서 행정부에 대응하는 개념으로서 입법부의 한 부분을 담당했다기 보다는 당정협조라는 명분아래 사실상 행정부의 입장을 대변·옹호해온 측면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집권당의 이같은 왜곡된 모습은 국회를 정부의 「파견대」로 생각하고 의정활동을 「작전」식으로 파악해온 구시대 위정자들의 잘못된 발상에서 연유되었다고 봐야 한다.
정부입장에 대한 여당의 「절대옹호」와 야당의 「절대반대」속에서 생산적인 국회를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문민시대에는 국회가 정권과 야당의 대리전 장소가 아니라 진정한 민의의 대변장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이를 위해서는 여당이 국회의 「진정한」 구성원으로 자리잡는 작업이 필요하며 의원 개개인의 의식개혁이 요구되고 있다.
문민시대에는 이와함께 여야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일사불란한 의정활동의 모습도 재검토되어야 한다는게 정치권의 지적이다.
과거 「작전」개념에 익숙한 여당은 물론 양김씨를 필두로한 야당세력도 의정활동에 있어서는 군사문화의 잔재로 보이는 일사불란함을 「미덕」으로 생각해왔다. 물론 야당의 경우 내부적인 당론 결정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고 「거대여당」의 막강한 힘에 대결하기 위해 일치단결의 모습이 필요했다는 측면도 있다. 여야 모두가 이를 과거에 묻고 의원 각자가 당론에 앞서 민의를 다양하게 대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각자가 헌법기관인 의원들의 생각과 이들을 통한 민위가 최대한 존중되는 국회,이런 국회가 바로 문민시대가 구현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중 하나이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행정부◁
문민시대의 등장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징적 대목중의 하나는 행정부의 변화이다.
특히 행정관행과 정책수행과정에 군사주의적 권위주의 색채가 깊이 배어 있던 현실에 비추어 볼때 행정부도 근본적인 변화를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6공정부가 집권말기에 이르기까지 군사문화의 폐습을 행정관료사회에서 걷어내려 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군출신 인사의 장관직 기용 등 인사의 기초적 원리에서부터 문민적 원리와는 거리가 먼 측면이 많았다.
따라서 새 정부는 군사주의에 뿌리를 갖고 있던 획일적 권위주의를 탈피,이를 범정부적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그동안 관료사회가 자체적으로 누적시켜왔던 병폐중 하나가 권위주의라고 할때 행정부가 스스로 새로운 관료문화를 정립하는 일은 문민시대를 열어가는 중요한 길목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선적으로 이는 행정부 고유의 위상을 찾아가는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행정이 갖는 전문성과 합리성,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정책의 일관성 등 관료주의의 생산적 측면이 확립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삼당선자가 청와대 비서실을 정비하는 대신 내각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국정운용의 방향을 정한 것은 바로 이같은 점을 감안한 쇄신책으로 풀이되고 있다.
행정업무의 재편·재조정 등을 위한 정부기구 개편논의는 기능적으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는 국정에 있어 장관의 정치적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 보장돼야 한다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각의 권한강화나 행정부 위상의 정립문제는 따지고 보면 장관의 행정소신이 국정 최고책임자에게 최고의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과 구조를 마련해주는 문제와 일맥 상통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이같은 행정개혁을 추진하는데 있어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상의 정통성을 확보했음은 물론,6공 초기 정부의 가장 큰 애로였던 여소야대라는 정치권의 외풍에 영향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각종 개혁과 개편의 추진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될 기득세력의 내부반발을 해소하는데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의 한 고위인사는 『정치사적 맥락으로 볼때 김 당선자의 집권은 「반야당」의 집권으로 볼 수도 있으며 이 점은 내용여하를 떠나 새 정부의 개혁을 기정사실로 널리 굳혀주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고 『3당 합당 자체가 구여 세력의 기득권 양보라는 측면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결국 개혁의 성패는 이에 대한 반발의 정도보다는 의지에 달려있으며,그런 만큼 새 정부의 과제는 더욱 무거울 수 밖에 없다는 의미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새 정부 행정개혁의 첫 걸음은 인사에서 시작해야 한다는게 중론이다. 특정지역에 대한 편중인사나 차별인사는 구조적으로 해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상징적 의미를 갖는 대형 발탁인사와 함께 정부내의 인사기준과 원칙의 적용과정에도 세심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조재용기자>조재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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