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경쟁·장선거로 진통 계속/중립내각·결과 승복 “새 이정표”「대선정국」으로 일컬어지는 92년은 김영삼 대통령당선자의 손에 의해 문민정치시대의 빗장을 여는 것으로 매듭이 지어졌다.
정초 벽두부터 이른바 민자당의 「후보가시화 파동」으로 시작된 92년 정국은 일년내내 대권경쟁을 둘러싼 정치권의 회오리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이로인해 한때 「정치과소비」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으나 올해는 우리 정치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해로 기록될 것 같다. 문민시대의 개막과 지금까지 정치적 역동의 중심축이었던 양김시대의 종막은 그 중요한 의미의 핵이라 할 수 있다.
14대 대통령선거는 이 땅에 끊이지 않았던 정권의 정통성 시비를 잠재우면서 패자가 결과에 승복하는 전혀 새로운 모습과 함께 우리의 정치를 단숨에 진일보시켰다.
대선기간중에 관권·금권선거 공방이 일고 「색깔론」 시비와 지역감정 현상이 재현되는 등 과정상의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가 최소한 「후진성」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 같다.
16년만에 직선제가 부활된 87년의 대선이후 권위주의의 청산과 민주화의 진전이 평가되고 있으나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의구심이 말끔히 가시지 않았던게 우리의 현실이다.
때문에 비록 「민주화의 시대」라 불리기는 했어도 6공기간중 사회 일각에서는 「공안정국」 「정보정치」 등 과거를 연상시키는 낯설지 않은 용어가 회자됐으며 정부와 국민 모두 정통성 시비의 음영에서 알게 모르게 시달려야 했다.
92년 정국은 3·24 총선에 대비한 여야의 공천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던 1월,「후보 가시화 파동」으로 불린 민자당내의 대권경쟁으로부터 시작됐다. 대통령후보 선출을 둘러싼 당내 계파간의 알력은 당초 「민정계대 민주계」의 구도로 출발했으나 YS 대세론이 확산되면서 「친YS대 반YS」의 구도로 바뀌고 5월에 들어 경선정국을 맞았다.
그러나 김 당선자와 맞섰던 이종찬의원이 경선과정에 「외압」이 있다면서 민자당 후보경선을 「위장경선」이라고 주장,경선을 거부하는 바람에 민자당은 김영삼총재체제로 재편되면서도 이 의원 및 일부 의원들의 탈당에 이어 10월 들어서는 박태준 전 최고위원까지 탈당하는 등의 진통으로 이어졌다.
이와함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월15일 청운동 자택에서 정치참여를 선언하면서 태동한 국민당은 당시 민자 민주의 양당구도가 충당하지못한 정치수요를 흡수하면서 단시간내의 약진에 성공,3·24 총선에서 31석을 획득하며 제3당으로 자리를 굳혔다. 국민당은 이어 대선 양상을 양김씨의 대결에서 「2김 1정」의 3각 구도로 변질시키기도 했다.
우리 헌정사에서는 보기드물게 대선을 8개월 앞두고 실시된 3·24 총선은 일반적 예측과는 달리 13대에 이어 또다시 여소야대를 재현시켜 정국의 파란을 예고했다.
그러나 14대 국회는 6월까지로 시한이 정해져 있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실시를 둘러싼 여야의 격돌로 처음부터 파행을 거듭했다. 국회가 대선 후보들의 대리전 장소가 됨으로써 제기능을 상실,양비론과 함께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8월 들어서며 한준수 전 연기군수의 「양심선언」으로 불붙은 여야의 관권선거 공방은 지자제 문제로 얼어붙었던 정국을 다시한번 뒤흔들어 놓았다. 여기에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문제로 틈이 벌어진 여권은 진통을 거듭했다.
당시의 김영삼대표는 관권선거의 책임을 묻는 개각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고 이에 노태우대통령은 헌정사상 초유의 선거관리 중립내각을 천명하며 민자당 당적을 떠났다.
중립내각은 결과적으로 이번 대선의 공정성 시비를 없애는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었지만 노 대통령의 탈당이후 후속 탈당한 일부 의원들은 신당 창당을 추진,한때 제4세력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국민후보 추대를 내건 신당세력은 그러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이상행보」에 휘말리면서 끝내 국민당으로 흡수돼 버렸다.
이렇듯 우리 정치사에 중대한 이정표를 남긴 92년 정국은 또한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할 큰 과제를 던져주었다.
대선결가에 나타난 투표성향은 고질적인 지역감정의 골이 심각한 국면에까지 이르렀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문민정치시대의 개막으로 우리 정치가 선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해도 합리보다는 감정을 선호한 지역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정치발전은 국민의식의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신재민기자>신재민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