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규모 확대 맞춰 재벌수 축소/「진짜 재벌」만 상호지보규제 적용정부가 29일 입법예고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방향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폐해를 보다 실질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허」를 버리고 「실」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날 입법예고한 시행령의 주요 개정흐름은 먼저 「정부가 인정하는 재벌」이라고 흔히 얘기되던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요건을 자산 총액기준 상위 30개 그룹으로 한정했다.
현행법상 올해 지정된 그룹이 78개이니 얼핏보면 재벌수를 줄여 경제력집중 완화의지가 약해진 것 아니냐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내용은 전혀 다르다. 지난 87년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가 시행될 당시 계열사 총자산이 4천억원 이상인 재벌은 32개였다. 이후 경제규모의 확대에 따라 대상그룹수가 마구 늘어나 올해의 경우 웬만한 건설업체나 심지어 법정관리업체까지 공정거래위의 관리를 받게 되었다.
그동안 학계 등 전문가들도 재벌지정기준을 경제규모 확대에 맞게 높이지 않을 경우 자칫 당국의 경제력 집중억제 시책이 「송사리」 몇마리 더 잡으려다 「월척」을 놓치는 꼴이 될지 모른다고 우려해왔다.
여기에다 내년 4월부터는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해 계열사간 1,2금융권 상호지급보증 규제라는 강력한 장치가 새로 도입된다. 중소기업은 아무리 건실한 우량기업이라도 담보가 없이는 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는 현실에서 재벌 계열사들은 상호지급보증 서류 한장만으로 금융자금을 내 돈처럼 쓰던 관행이 수술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지난 3월말 현재 국내 30대 재벌의 1·2금융권 상호지보 규모는 무려 1백69조여원,자기 자본대비 평균 5백40%에 이르는 것으로 추계됐다. 내년 4월 개정법이 시행되면 향후 3년내 그룹별 상호지보 규모를 자기 자본비 2백% 이내로 줄이도록 의무화되고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엄청난 과징금과 고발 등 처벌이 따른다.
현재 10대 그룹 가운데 일부 재벌은 상호지보 규모가 자기 자본대비 무려 3천%를 웃도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그룹은 3년내 2백%를 맞추려면 대대적인 기업공개와 유상증자로 자기자본 규모를 키우든가 최악의 경우 계열사를 매각처분해야 하는 사태까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가 정기국회 개정법안 심의과정에서 그토록 집요하게 반발한 것도 따지고 보면 상호지보 규제가 재벌의 문어발 확장에 자금줄부터 차단하는 획기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의 자체 조사결과 30위권이하 재벌들은 금융기관들이 신용도를 그다지 인정하지 않아서인지 상호지보 절대규모가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정부는 상호지보규제라는 튼튼한 그물을 마련하는 대신 그물눈은 다소 성기게 해 덩치 큰 「진짜」 재벌을 보다 확실히 묶는 방법을 선택한 셈이다.
이번 입법예고와 관련,공정거래위 관계자는 『개정 법률정신에 맞게 특히 상호지보규제 부분은 예외를 최소화해 시행령을 정했으며 아직 관계부처 및 재계와의 협의절차가 남았으나 경제력 집중의 실질적 억제라는 원칙을 견지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유석기기자>유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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