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백주 맞아 인기 폭발적/「홍태양송가」 반년만에 5백만장 팔려/장식용 사진 1천만장·T셔츠도 “날개”/문혁이후 동상건립… 홍콩·대만으로 파급도【홍콩=유동희특파원】 내년에 탄생 1백주년을 맞는 모택동이 대륙전역에서 「부활」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가 아니다. 상품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92년은 88세를 맞은 「살아있는」 등소평에게 득의의 한해였다. 그러나 26일로 탄생 99주년을 맞은 「죽은」 모택동에게도 올해는 대중의 망각과 외면으로부터 확실하게 다시 소생한 의미있는 해였다.
문화대혁명 당시의 고통어린 기억이 아스라해진 몇년전부터 중국인민들 사이에서 일기 시작한 모택동 숭모열기에 시장경제의 상혼이 가미되면서 확실한 「상품」으로 자리잡게 됐다.
91년 중국 창편총공사 상해공사가 제작한 녹음테이프 「홍태양모택동 송가」는 반년도 안되는 사이에 5백만장이 팔려나갔다. 문혁당시 불렸던 30편의 혁명가곡을 담은 이 테이프는 1년반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임과 동시에 스테디셀러이다.
『동방홍,태양승,중국출료개모택동』(동쪽이 붉어지고 태양이 떠오른다. 중국에 모택동이 출현했다)로 시작되는 타이틀곡 「동방홍」의격정적인 곡조를 현재의 정서에 맞게 편곡한 것이 전례없는 히트를 기록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올해 구정무렵에는 모택동의 장식용 사진이 일거에 3백42만장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같은 시기 중국 인민들은 「존경받는 총리」 주은래의 사진이 60만장,마르크스,엥겔스,레닌의 사진이 각각 35만장이었던 점을 고려해 볼 때 「모택동」의 인기는 확실하게 이들을 압도하고 있다. 92년 7월말 통계는 지금까지 무려 1천1백만장의 모택동 기념사진이 팔려나간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이 모택동 사진은 주로 「호신부」로 쓰인다는 설명이다. 북경의 택시운전기사들은 한국의 택시기사들이 『오늘도 무사히』라는 글귀아래 소녀의 기도하는 그림을 차앞 유리에 붙여놓는 것처럼 모택동의 사진을 붙여 놓는다.
모택동의 상품화는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끝가는데를 모르고 있다. 모택동 달력이 등장했는가 하면 모택동의 또다른 별칭을 좆은 「대구성」표 라이터도 출현했다. 점화화 동시에 동방홍의 노래가 나오는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이밖에 하트문양속에 모택동의 웃는 얼굴모습을 담은 T셔츠도 나왔다. 그리고 문혁당시 수십억개가 발행됐으나 등소평 집권이후 자취를 감추었던 모택동 배지도 이제는 거리 좌판에 재등장했다.
지난 8월13일에는 유명한 휴양지인 북대하가 있는 진성도시에 문혁이후 중국대륙에서는 처음으로 모택동의 동상이 세워졌다. 모가 54년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 쓴 시가 새겨진 이 동상 역시 역사기념이라는 측면보다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의식한 상품용의 성격이 짙다.
이러한 모택동의 상품화는 대만과 홍콩까지도 파급되었다. 대만에서는 지난 7월 모택동이 쓴 시를 편집한 「모택동 시사전집」을 출간했다. 대만에서 모택동이 쓴 책이 공식 발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에서는 모택동송가를 뮤직비디오로 만든 비디오 디스크가 제작됐다. 테이프처럼 이 비디오 디스크이 명칭은 「홍태양」으로 3집의 판에 모두 80여곡의 모택동송가가 관련기록 필름과 함께 수록됐다.
중국 당국의 자료협조를 받아 이 비디오 디스크를 출반했다는 홍콩 음반사 사장 오첨배씨는 정치적 동기는 없고 순전히 상업적 각도에서 이 상품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9월 출반후 1만장이 팔렸으나 90%가 중국에서 소화될 정도로 아직은 홍콩시장내에서의 반향은 크지 않다.
그러나 오 사장은 내년 12월26일 모택동 탄생 1백주년을 앞두고 이 음반은 불티나게 팔려나갈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역사의 박물관에 모셔진채 인민들로부터 유리됐던 모택동을 다시 대중에 가까이 다가서게 한 것은 다름아닌 사회주의 시장경제였다. 이런 의미에서 볼때 모택동은 등소평의 개혁개방의 최대 피해자인 동시에 최대 수혜자라는 모순의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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