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최해운특파원】 지난 60여년간 태국정치를 주물러온 군부는 과연 조용히 병영으로 돌아갈 것인가.지난 5월 유혈민주화 시위사태에 이은 민주정부 수립으로 군부의 힘이 민주화란 대세속에 약해지고 있는 가운데 옛 군부 핵심지도자의 신당 창당 움직임,군최고사령본부 건물의 신축공사에 대한 논란 등 정치권과 군부간에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
최근 태국의 야당들은 현재 신축중인 군최고사령부본부 건물이 바로 옆에 위치한 민족 성역인 「로열플라자」를 위압,모독하고 있다고 비난해 공사가 중단됐다.
방콕 중심가에 총공사비 4천만달러(3백20억원 상당)를 들여 초현대식 지하 2층 지상 8층으로 짓고 있던 이 건물 주변에는 라만 5세 왕의 동상 등 많은 역사적 기념물이 산재해 있고 국왕의 사열식 등 국가의 주요행사가 열리는 로열플라자 바로 옆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왕궁도 굽어 볼 수 있는 곳이다.
야당 의원들은 93년도 예산심의과정에서 최고사령부 건물이 로열플라자를 위압할 정도로 높아 국가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있다면서 이 공사의 철회를 주장하고 나섰다.
태국군부는 이 건물을 미국의 국방부를 본따 모든 군사업무를 총괄하는 센터로 이용할 방침인데 외부의 미사일 공격에도 대응할 수 있는 최첨단 전자장비를 설치할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이 건물은 지난 5월 군정종식을 요구하는 민주화시위 사태이후 약화되어 가고 있는 군부의 권위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상징성 때문에 군부의 애착이 대단하다.
군부는 야당의 비난에 대해 『로열플라자 주변에는 최고사령부보다 높은 건물이 많다. 여태껏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으며 이 공사는 이미 아난 판야라춘 전 총리에 의해 승인받았으므로 합법적인 것』이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이런 와중에서 육군 부총사령관인 살야 스리펜 장군은 『군인도 「동물」이 아닌 이상 참는데 한계가 있다』면서 『정치인들은 군의 권위를 더이상 훼손하지 말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상당수 국민들도 이 건물의 위치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함에 따라 군최고지도자들은 회의를 열어 건물의 높이를 당초 계획보다 낮추는 등 공사계획을 재검토한다는데 합의했다.
허약한 연립정부를 이끌고 있는 추안 리크파이 총리는 이미 이 건물의 지하공사가 완료돼 벌써 8백만달러를 이미 지출한 상태임을 감안할 때 야당의 요구대로 계획 자체를 백지화해야 할지,아니면 규모를 축소조정해 건축을 허용해야 할지 딜레마에 빠져있다.
정부는 군부가 최고사령부 건물들을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기대하고 있으나 군부는 축소조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더이상 후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추안 총리는 내주중 각의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하고 이를 검토하기 위한 관련자료의 수집을 군지도자들에게 명령했다.
한편 지난 5월 민주화 시위를 무자비하게 유혈진압한 끝에 권좌에서 쫓겨난 수친다 총리 등 옛 군부실세들이 최근 자신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신당을 창당,정치에 복귀할 것이란 보도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정치분석가들은 최근 일련의 사태에 비쳐볼때 군부를 더이상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일 경우 위기감을 느낀 구·신 군부지도자들이 의기투합,정치위기를 야기시킬 가능성마저 있다고 점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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