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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미 행정부 무역대표 미키 캔터(뉴스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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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미 행정부 무역대표 미키 캔터(뉴스메이커)

입력
1992.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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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 출신의 “교섭의 명수”/대외통상담당 경력없어 “다소 의외”/“정치역량 더 중요” 클린턴 의중 반영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 미키 캔터 민주당 선거대책본부장이 내정됨으로써 차기 클린턴 정부의 조각이 마무리됐다. 클린턴이 차기 행정부 인선의 마지막 착점을 USTR 대표 내정에 둔 것은 대외무역 강화,미 경제재건이 제1의 과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 상징적 제스처로 풀이된다. 내외의 지대한 관심속에 등장한 캔터 무역대표는 하마평에 오르지 않은 다소 의외의 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선 그의 이력에 대외통상을 담당한 기록이 없다는 점이 이같은 의외성을 뒷받침한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캔터가 클린턴의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했고 당선자 부처와 오랜 지기라는 사실 때문에 그가 임명됐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클린턴과 캔터의 친밀감은 캔터가 비서실장에 임명됐다면 어울릴 설명이다. 따라서 이번 인선은 경제팀 구성에 「정치력」을 중시하는 클린턴의 일관된 구상아래 이루어졌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다.

「경제트로이카」라는 재무장관 예산국장 경제담당 보좌관이 로이드 벤슨,리온 파네타,로버트 루빈 등 경제전문가가 아닌 설득과 교섭의 명수로 이름난 법률가로 채워진 것과 동일 맥락. 즉 대의회관계,대외교섭력 등 정치역량이 경제지식보다 향후 미국경제 부흥에 더 중요하다는게 클린턴의 의중이라 할 수 있다.

이와함께 대외통상정책을 둘러싼 강경주장과 온건주장 사이의 타협책이라는 측면도 있다. 치열한 양론 사이에서 클린턴은 중도적인 캔터를 지명,조화를 꾀했으며 아울러 클린턴이 지근인사를 통해 통상문제를 직접 관장할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런 배경아래 등장한 캔터는 테네시주 내슈빌 태생으로 반터빌트대와 조지타운대를 졸업한후 주로 불법 이민자들을 변호하는 가난한 변호사로 출발했다. 78년 공공 법률구조단체에서 일하면서 클린턴과 교분을 나누었고 86년 아동보호기금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일했다. 그는 법률가·교섭가로서의 명성을 떨치면서 필립 모리스,제너럴 일렉트릭 등 거대기업의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캔터는 이 여세를 몰아 80년 카터 선거운동과 84연 맥거번 선거운동에 참여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 때의 경험과 친분을 바탕으로 클린턴 선거운동을 진두 진휘,「변화의 시대」라는 슬로건을 창안해 클린턴의 당선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그러나 독선적 태도로 클린턴 측근들과 마찰이 있었고 클린턴 진영의 내부사정을 자신이 관계하는 법률회사에 알려 잡음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를 의식한 캔터는 내정발표후 『결코 나의 영혼을 법률고객을 위해 파는 식의 사건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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