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프랑스 대학/입학은 누구나 졸업은 엄격제한(대학을 살리자:40)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프랑스 대학/입학은 누구나 졸업은 엄격제한(대학을 살리자:40)

입력
1992.12.24 00:00
0 0

◎학교별로 전공 따라 특화 “토론식 수업”/교수도 학생도 학문 매진 치열한 경쟁/엘리트교육 기관 별도설치… 정부서 장학금 등 대폭 지원【파리=한기봉특파원】 소르본 대학으로 더 잘 알려진 파리 제4대학.

이 대학을 한바퀴 돌다보면 조용하고 잘 정돈된 프랑스 특유의 분위기 속에서 열기같은 것을 느께게 된다.

7백년 이상의 역사를 말해주는 고색창연한 회색빛 건물속에 대형 천장화가 내려다보고 있는 원형 강의실에 들어서면 마치 박물관에라도 온 듯한 위압감을 받게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모습은 캠퍼스 여기 저기와 강의실 계단에 쪼그려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면학태도이다.

그들은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으며 잡담을 하거나 우두커니 혼자 앉아 사색하는 한가로운 학생은 그리 흔치않다.

지난 12월1일 한 강의동의 1층에서는 마침 세계 AIDS의 날으 맞아 사회 단체 회원들이 팜플릿과 함께 콘돔을 나눠주고 있었으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바로 위층에 있는 3백여석을 갖추고 있는 도서관에는 학생들이 책을 대출받느라 긴 줄을 서고 있었다.

한 강의실에서는 박사학위 논문 구두심사인 「수트낭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날카로운 질문을 퍼붓는 심사교수 5명 앞에서 자신의 이론을 논리적으로 검증받는 이 필사적인 공방은 강의실을 가득 채운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리에 열리고 있었다. 학과 사무실 벽에는 학생이름과 시간,장소가 적힌 「이달의 논문 심사 일정표」와 함께 이미 심사받은 학생들의 성적이 게시돼 있었다.

자신의 연구실이나 사무실을 갖지 못하고 있는 많은 교수들은 빈 강의실 등에서 열심히 학생들과 면담한다. 수업은 학생이 많든 적든 대체로 발표와 토론식으로 진행된다.

프랑스 대학에서는 젊음과 낭만대신 진지하고 치열한 학구열이 캠퍼스를 압도하고 있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대학의 본질적 사명이라고 할때 프랑스 대학은 적오도 이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학보다는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부단히 연구하지 않는 교수는 자리를 지키기 힘들고 공부하지 않는 학생은 졸업할 수가 없다.

프랑스 대학의 과정(학년)별 학생수를 보자. 91·92학년도 현재 한국의 교양과정에 해당하는 제1시클(2년)에 등록된 수는 66만여명. 그러나 제2시클(학사과정 1년과 석사과정 1년을 더한 2년) 학생수는 38만5천여명이다. 제3시클(박사과정)은 19만여명. 교양과정에서 전공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40%가 중도탈락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입학은 비교적 쉬워도 졸업이 어려운게 프랑스 대학이다. 입학과 동시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부분 졸업장을 보장받는 우리나라 대학생보다 당연히 공부를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중도 탈락한 학생들에 대한 문제점이 물론 있지만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 취업교육의 비중이 큰데다 전공에 따라 2년과정,3년과정의 수료증이 있고 일반직장들도 대학 몇년수료자 등으로 자격을 세분해 중도 탈락자들을 받아들이는 등 사회 역시 오랜 전통에 맞게 수용적인 태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학의 관문이 좁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치열하지는 않다. 대학의 서열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대학에 가기 위해 우리나라의 학력고사와 비숫한 「바칼로레아」(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바칼로레아의 합격률은 지난해의 경우 약 52만명이 응시해서 38만여명(약 73%)이 합격했다. 시험은 A부터 H까지 전공별로 세분화되어 있다. 이 시험에 합격하면 대체로 어는 대학에 언제든지 갈 수 있다.

○자율적 학습 정착

학생들은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공을 선택한다. 이는 우리처럼 프랑스대학이 학문 백화점식의 종합대학이 아니라 계열별로 특색화 되어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문학·철학을 하고 싶으면 파리4대학에,사회과학의 경우 파리2대학에 응시한다. 따라서 대학 입학때 학생의 앞날이 보장되는게 아니다. 학생의 장래는 그가 대학에서 얼마나 학문적으로 성취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같은 제도하에서 학생은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대학의 자율은 학교 당국보다는 학생이 누리고 있다. 대체로 제2시클 이상이되면 마음대로 학교를 옮길 수 있다. 지도교수가 학교를 바꾸면 학생도 따라가는 관행이 보편화돼 있고 자신이 전공하고 싶은 분야와 교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대학으로 간단히 옮길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절차는 담당교수가 전적으로 결정한다. 대학당국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교수가 동의하면 대체로 가능하다. 이때문에 교수의 권위는 우리대학보다 훨씬 높다. 프라스대학 교수들은 권위를 갖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연구를 해야한다. 바캉스가 시작되면 대학교수들은 대부분 시골 별장으로 책을 싸들고 내려가 다음학기 수업준비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논문은 공개심사

1∼2년 주기로 강의노트를 새로 작성하지 않으면 학생들과의 토론에서 밀린다. 프랑스에서는 어떤 대학을 나왔느냐보다 어느 교수에게 지도 받았는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프랑스 사회만큼 공개적인 토론이 무성한 곳도 드물 것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치인과 각료,전문가 등이 정책을 놓고 언론에서 토론하는 프로그램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같은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토양은 교육방식에서 싹트고 있다. 암기식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며 비교하는 토론식 수업이 대부분이다. 대학의 마지막 관문인 논문 공개심사인 「수트낭스」란 바로 자신의 이론을 방어한고 변호한다는 뜻에서 나온다.

예를들어 92∼93학년도 「바칼로레아」의 철학문제를 보자. 지역마다 다르지만 몇개를 발췌해 보면 「타인의 판단에 무관심할수록 자유스러워질 수 있는가」 「비이성적인 것은 항상 어리석은 것인가」 「과학기술은 자연을 개선하는가,파괴하는가」 등이었다. 완전한 논문서술형이지 단답식이란 없다. 국어문제도 예문을 요약하거나 특정단어의 뜻을 기술하는 것등이 전부이다.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독서를 통해 주제의 분석력과 표현력·예증능력을 키울 수 밖에 없다.

프랑스 대학을 말하면서 「그랑제꼴」(Grandes Ecoles)을 빼놓을 수 없다. 고등직업 전문학교인 이 학교는 평준화·보편화 되어 있는 일반 대학이 담당하기 어려운 수재 교육을 보완하는 측면을 갖고 있다. 대학이라고 하지 않고 학교라고 불리는 이 고등교육기관은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최고 명문대학인 셈이다. 이런점에서 프랑스 고등 교육기관은 엄밀히 두가지 형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일반 대학은 모든 바칼로레아 소지자에게 언제라도 문호를 개방, 균등한 교육기회를 부여하고 대신 입학후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적격자만 졸업시킨다. 이에 비해 그랑제꼴은 입학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바칼로레아에 합격한 후 대부분 2년간 준비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류고교를 중심으로 공식적으로 그랑제꼴 준비반이 운영되고 있다. 이 준비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바칼로레아의 성적이 최상급이어야 하는 등 첫 관문에서 부터 경쟁이 엄청나다. 일반 대학을 2∼3년 이상 다니다 그랑제꼴 입학시험을 치기도 한다.

○그랑제꼴수 증가

그랑제꼴의 수는 점점 늘어나 현재 전국에 공사립 1백60여개에 재학생은 5만여명이다. 일반 대학의 학생수는 대개 1만∼2만여명이나 이곳은 정원이 수백명에 불과하다. 유명 정치인·석학·고급공무원·대기업의 간부 등 프랑스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표적인 그랑제꼴인 폴리테크니크(이공계),ENA(국립행정학교),ENS(국립 고등사범학교), HEC(경상계),시앙스포(정치) 출신이라고 보면된다. 정부는 이들에게 상당한 금액의 장학금을 주고 있다. 결국 프랑스 사회와 정부가 제도적으로 소수의 엘리트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프랑스 고등교육은 개방된 입학,엄격한 졸업,소수정예의 엘리트교육,그리고 학생위주의 대학 자율과 교수의 권위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내가본 프랑스 대학/수업때 사제간 허물없이 의견 교환/캠퍼스 시설 연구증진 목적에 초점

프랑스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우선 교수와 학생사이에 벽이 없다는 점이다. 전공분야에 관한한 서로간에 무척 활발한 의견교환이 이뤄진다.

특히 석사나 박사과정 세미나 수업에서는 서로간에 언쟁이 일어날 정도로 뜨거운 학문적 열기가 시종 수업 시간을 압도한다. 그러나 남의 의견은 존중된다. 이같은 분위기는 나와같은 동양계 학생에게는 무척 낯설어 보였다.

수업시간의 토론을 위해서는 학생은 물론 교수도 상당한 양의 책을 읽고 정리해야 한다. 학기 초에는 읽어야 할 참고문헌들이 소개된다. 수시로있는 발표를 위해 또 보충 서적을 봐야 한다. 책속에 파묻혀 지낸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책값이 비싸므로 주로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복사해본다.

프랑스 대학생 중에도 열심히 하지않는 학생은 물론 있지만 대체로 자신의 전공에 대한 지식과 열정은 대단해 보였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학문적일때 더욱 긴밀해진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에서는 사제간의 교류가 인간적으로 이루어지지만 프랑스에서는 학문적으로 성숙된다고 할 수 있다.

학교시설은 특히 인문계 대학의 경우 넓은 캠퍼스와 각종 편의 복지시설,교수 개인마다 연구실을 갖춘 우리나라 종합대학과 비교할 때 뒤떨어진다. 소르본은 학생수가 2만여명이 넘지만 캠퍼스는 오로지 학문증진과 연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파리 대학만 해도 분야별로 13개 대학으로 나눠져 있고 각각 보수적·진보적 색깔을 갖고 있지만 대체로 68년 학생시위 이후 사회의 병리나 모순을 타파하려는 사회정치적 참여 열기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대개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대학생들은 생활비와 책값을 벌기위해 가게점원,파트타임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한다. 프랑스 대학생들은 검소하다. 거리에서 가장 옷을 못입은 여자는 대부분 여대생이다.

□곽민석씨

30·파리4대학 불문학박사 과정·87년 연세대 대학원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