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결구도 탈피 대화·타협 지향/야권 재편… 여당 독주 가능성도김영삼 대통령당선자는 철저한 「의회 민주주의자」이다.
그 자신 40여년간 헌정사의 중앙무대를 지켜오면서 의회 민주주의 원칙을 관철하기 위해 대화하고 타협하며 혹은 투쟁해온 장본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 당선자는 기회있을 때마다 우리나라 정치가 파행을 거듭해온 것은 여야의 대결적인 정치행태에서 연유한다고 지적한바 있다. 또한 지난 시절 파행으로 얼룩진 여야관계는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결국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불신을 극에 달하게 한 결정적 원인이라고 진단해왔다.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들이지만 집권당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처리와 야당의 무조건적인 반대가 정치현실을 얼룩지게 했다는 인식이 김 당선자의 뇌리에는 강하게 배어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적어도 향후 여야관계는 상호 파트너십이 존중되고 대화와 타협이 견지되는 생산적 균형관계가 어렵지 않게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김영삼 새 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전통성과 과반수 의석이 안정적 기반을 토대로 출발하고 있는 만큼 일단 바람직한 여야관계를 향도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춘 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치권을 지탱해온 「양김구도」의 한 축이 무너져 내림으로써 실질적인 여야 균형관계 의지속이 가능하겠느냐는 일말의 우려도 뒤따르고 있다는게 사실이다.
이는 다시말해 야권,특히 민주당의 경우 김대중씨라는 절대적 구심점을 상실한 마당에서 전열을 재정비해 민자당 정부에 대한 견제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이에 따른 민자당의 일방독주는 어느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게다가 야당의 형편은 앞으로 체제정비의 진통을 겪을 것이고 이는 당장 야권의 혼조를 수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므로 여야관계의 「실종」이란 다소 성급하고 극단적인 전망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당의 경우 역시 당분간 홍역과 조정기를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요컨대 야권의 총체적인 재편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여야 정국은 대결구도가 아닌 한시적인 휴전기를 맡게될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다. 특히 민주·국민 양당이 사안별 공조체계를 시급히 복원해 민자당에 대항하려 해도 당장 정치쟁점화할 수 있는 소재가 마땅치 않은 현실여건 역시 야권의 응집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 같다.
예컨대 「부산 기관장 모임」 사건수사를 놓고 민주·국민당이 공세를 펴고 있지만 대선 전 사건을 오랜기간 쟁점화하기란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자치단체장 선거문제를 어느 시점에서 재론한다고 해도 이 역시 민자당을 택한 선거결과의 하중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정황들을 종합해 볼때 김영삼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여야간의 조정기간은 예상외로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국 김영삼 새 대통령의 정국운영 패턴이 구체적으로 선을 보인 다음에라야 향후 여야관계에 대한 구체적 조명이 가능해질 것이란 분석인 것이다.
다만 의회주의 원칙에 충실하려는 김 당선자의 정치철학을 감안한다면 몇가지 조심스런 가정을 추출해낼 수가 있다.
즉 김 당선자로서는 정권의 안정적 운용과 소모적인 정쟁의 탈피가 얼마나 절실한 과제인가를 뼈저리게 체험한 인물로서 정당 정치의 착근을 위해 이른바 「양당 구도」로의 재편구상을 장기적 플랜으로 실행에 옮길지 모른다.
대선 기간중 관훈토론에서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편의향을 비쳤듯이 김 당선자는 여야의 실질적 균형관계를 착근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이는 인물위주의 지역중심 구도라는 현실여건을 고려할 때 인위적인 추진방식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 당선자는 「민주화의 완성」과 「지역주의 해소」라는 양대 과제의 해법을 교과서적인 양당 구도로의 정계재편에서 찾게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와함께 「보혁구도」로의 양당 체제가 보수위주의 정치적 토양으로 인해 시기상조라고 한다면 혁신내지 진보그룹이 정치권으로 뚜렷하게 진입할 수 있는 상황여건을 나름대로 조성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또한 매우 조심스런 전망이지만 야당이 이합집산을 통해 어느 한 정당으로의 세보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렇게 된다면 기존 정당들이 지역색채를 많이 털어버릴 수 있게 되면서 정당간 정책대결의 기본 틀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계의 총체적인 이합집산과 재편이 이루어진다고 할 때는 14대 총선전과 같은 거대 민자당의 새로운 출현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만일 이같은 경우라면 민자당의 장기적 집권 플랜이 보다 구체적으로 강구되면서 내각제의 공론화를 유도하는 계기를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 여야관계는 야권의 재편과 이에 따른 정계구도의 총체적 변화추이에 의해 보다 선명한 조망이 가능해질 수 밖에 없으며 민자당이 이를 정관하는 가운데 상당기간 집권 여당위주의 정국운영이 한층 부각될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 같다.<정진석기자>정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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