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무 불개입 거듭 천명/「한국 현대정치사」 집필에 의욕김대중 전 민주당 대표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게 될까. 의표를 찌른 정계은퇴선언과 뒤이은 칩거를 두고 「정치거인」의 행로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 전 대표의 구체적인 행보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당내의 높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어떤 형태로든 정치를 재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김 전 대표는 21일 「사람들을 피해」 지방으로 내려가기에 앞서 동교동 자택에서 이기택대표 등을 만난 자리에서 일체의 정치활동을 재개할 의시가 없음을 거듭 분명히 했다.
이날 상오 부인 이희호여사와 함께 이틀밤을 지낸 워커힐호텔에서 자택으로 돌아와 잠시 이 대표를 만난 김 전 대표는 「당에 대한 지도」를 당부하는 이 대표의 간곡한 요청을 『모든 일을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해달라』고 정중히 거절했다.
당헌규정에 따른 대표최고위원 권한대행 지명요청을 거부한 김 전 대표는 『상임고문을 맡아달라』는 요청에 대해서도 『정치를 그만둔 사람으로서 맞지 않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또한 『이 대표가 잘해주길 바라고 국민에 약속한대로 평당원으로서 이 대표를 돕겠다』고 간접적으로 「이 대표체제」를 지지할 뜻을 비쳤으나 『전면에 나서서 지지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김 전 대표가 현실정치와 분명한 거리를 두려는 것은 현실정치에 대한 언급이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계은퇴」의 결단을 훼손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한 측근은 『김 전 대표로서는 대선패배이후 국민과의 약속만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이라면서 『그길만이 유일하게 지고도 이기는 길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김 전 대표가 정계은퇴를 결심하게 된 깊은 뜻을 헤아려 달라는 주문을 잊지 않았다. 김 전 대표는 일요일인 20일 측근들에게 방문을 받은 외에는 일요미사도 거르며 조성기의 「전국시대 1부」를 읽는 것으로 소일했다. 『책도 보고 글을 쓰면서 젊은이들에게 국내외 문제에 대해 강연이나 강의를 하겠다』는게 김 전 대표의 거취구상이다.
또한 이날 하오 부인 이 여사와 함께 지방으로 떠나면서 행선지를 일체 비밀에 부칠 것을 당부하고 『앞으로 1,2년간은 내 이름이 일체 언론이 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김 전 대표의 이같은 결심은 거의 「은둔」 추측까지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적어도 내년 3월로 예정된 전당대회 때까지는 당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올 겨울의 「DJ구상」은 지금까지의 정국구상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삶과 역사에 대한 구상이 될 것 같다.
『역사에 평가를 맡기고』 정치전면을 떠난 「정치거인」의 본격적인 역사와의 대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난한 독서욕을 보였던 김 전 대표는 평소 『정치를 그만두면 참으로 할 일이 많다.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싶고 무엇보다도 한국 현대정치사를 체험을 실어 쓰고 싶다』는 뜻을 자주 비쳤다.
이로보아 그는 우선 심리적 충격과 다양한 감회가 정리되는대로 본격적인 집필구상에 들어갈 것 같다.
또한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좌우명대로 후세의 사가들을 의색해가며 신중한 삶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표는 21일 이틀째 동교동 자택을 방문한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완용은 무엇이 되느냐에 뛰어났으나 어떻게 사느냐에 실패했고 안중근의사는 아무자리도 갖지 않았으나 어떻게 사느냐에 목숨을 걸었던 분』이라며 『나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역사의 평가를 이처럼 중시하는 그의 철학으로 보아 김 전 대표는 정치지도자의 삶에는 종지부를 찍었지만 국민적 지도자로 남고자하는 강한 의욕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한국현대사의 격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헤쳐온 그의 발자취로 보아 이같은 의욕은 이미 거의 이뤄져 마지막 「점청」만을 남기고 있는 셈이다.<황영식기자>황영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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