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미 대통령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인 제럴드 포드는 지미 카터에게 패배한뒤 『나는 귀하를 지지한다. 귀하는 분명히 승리했다』고 축전을 보냈다.이에 카터는 『이제 우리 국민은 포드를 지지했든 카터를 지지했든 모두가 하나다. 이 나라를 단결시키는데 힘을 합치자』고 역설했다. 4년뒤 재선에 실패한 카터는 레이건 당선자에게 『국민의 새 인물을 선택한 이상 나는 그 결정을 흔쾌히 받아들인다』고 축하했고 레이건은 『귀하의 애국심에 경의를 표한다. 건국이래 지켜온 민주주의 원칙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견지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대선에서 결과에 대한 승복은 너무나 당연하며 당·낙선자들간의 「위로와 축하」 교환은 오랜 아름다운 전통으로서 패배를 승복하기는 커녕 개표 다음날부터 새 정권에 대한 타도 투쟁선언을 관례처럼 보아온 우리에게 있어선 꿈같이 여겨졌던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14대 대통령선거 결과에 대한 낙선자인 김대중·정주영후보가 인정,승복하고 김영삼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 것은 참으로 신선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지극히 상식적인 일임에도 이를 실천하는데 무려 44년이 걸린 것이다.
더구나 김대중후보가 패배의 책임으로 국회의원직을 사퇴,사실상 정계 일선에서의 은퇴를 밝힌 것은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국민 심판의 엄정함을 새삼 음미하면서 평당원으로 백의종군하겠다는 그의 결단은 어떻든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김 후보의 은퇴표명을 접하면서 필자는 닐 키녹 영 노동당수를 떠올리게 된다. 키녹은 지난 64년부터 하원의원에 당선,28년간 재임해오면서 지난 3년이래 년째 당수직을 맡은 야당의 대표. 그는 올해 4월 치오르는 야당 지지여론을 업고 13년만에 보수당 정권을 꺾고 집권의 꿈에 불탔으나 총선거에서 33석의 의석을 늘렸을 뿐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자 많은 국민들과 당원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민주정치는 곧 책임을 지는 일』이라며 당수직을 사퇴하고 사실상 정계를 떠났다.
어쨌든 두경쟁사가 국민의 선택을 흔쾌히 인정하는 것은 김영삼당선자에게는 자신을 찍지 않은 반대표의 목소리·의견까지 수용하고 실천해야 하는 부담이 되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김 당선자는 14대 대통령에 취임하기까지는 아직 두달여의 시일이 있지만 결코 긴 시일이 아니다. 그로서는 이 기간동안 원만한 정권인수 준비와 함께 모든 공약과 선거때 나타난 국민의 요구와 바람을 바탕으로 새정부 출범 직후부터 실천해 나갈 시정계획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첫째 새내각 등 각종 요직의 인선을 원만하게 하는 일이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통치는 곧 인사인 만큼 널리 적재를 골라 최대한 적소에 기용하는 일이 중요하다. 판에 박은 지역 편중을 탈피,능력위주에다 각 지역별로 고르게 할 것과 특히 반대세력의 인사도 발탁하여 국민내각을 구성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또 일단 기용한 인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대통령 임기까지 재임시키도록 해야 한다. 국민들은 내년 2월 하순 새 정부의 정부 진용을 보고 김 당선자의 인사솜씨를 판정할 것이다.
둘째 정치 행정 경제 사회 교육 등 각 분야의 제도와 운영을 시대요구에 맞게 과감한 개혁·개선을 단행해야 한다. 이와함께 만연된 각 분야의 한국병에 대한 치유 처방을 통해 약속한 「신한국의 실체」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와관련,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 다음날부터 1백일간 매일 행정부내 고위정책 회의를 열어 국가적인 공황의 극복과 경기회복 방안을 마련,실천에 옮겼던 것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셋째 새 정부는 각 분야에 걸쳐 겉으로 화려한 치적주의와 산술적인 성과주의를 철저히 지양하고 조용하게 실천하고 일하는 정부가 돼야 한다. 또 공개 행정과 함께 한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 국민이 정부가 하는 일을 믿게 하는 성의가 요구된다.
적어도 김 당선자는 국민들이 「실천하는 대통령」 「서민 대통령」 「검소한 대통령」 「약속지키는 대통령」 「식언하지 않는 대통령」을 원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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