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더 가까워진 2백만 동포의 어제와 오늘(중국조선족:15)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더 가까워진 2백만 동포의 어제와 오늘(중국조선족:15)

입력
1992.12.19 00:00
0 0

◎연길/거리도 유행도 마치 “서울에 온듯”/도로엔 코로나형 택시 건물엔 한글간판/60∼70년대 「우리 변두리」 모습과 흡사/공단·공항등 신축 한창… 무역도시로 발돋움 박차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 연길에는 60∼70년대의 서울모습과 현재의 서울분위기가 묘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한다. 북경에서 60명정도가 타는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로 연길공항에 도착,20분정도 차를 타고 가면 1,2층 벽돌건물위에 한글로 씌어진 목제간판들이 70년대의 서울 변두리를 연상시킨다.

코로나택시와 외형이 비슷한 러시아제 중고 라다택시나 검은색 청색계통의 두툼한 옷차림을 한 행인들은 70년대 서울의 기록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저기 치우지 않은 눈이 쌓여 있고 진흙탕도로가 널려 있는 연길시에서는 낡은 빈민가를 헐어 빌딩을 새로 짓고 도로를 닦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러나 서울의 과거모습을 더 잘 느끼게 해주는 것은 이런 외양보다 「한번 잘 살아보겠다」는 활기찬 움직임이다. 서시장 등 주요 시장 상인들이나 개체소는 지금까지 정부가 늙어죽을 때까지 보살펴주던 「철밥통」을 스스로 차버린채 홀로서기에 여념이 없다. 술잔을 마주칠 때 『돈 법세다』라는 구호가 유행할 정도이다.

대학교수 등 정신노동자의 월급이 1백50∼2백50원(한화 2만2천5백∼3만5천원)인데 비해 택시운전사는 1천원이상,개인택시 운전사는 3천∼4천원(45만∼60만원)이나 벌고 있어 돈되는 일로 직업을 바꾸거나 제2직업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개체호나 사영기업 종사자는 91년말 현재 조선족 5천4백여명으로 추계되며 모두가 개채호인 서시장 상인중에서는 80%가 조선족 여성이다. 60년대까지 6곳에 불과했던 개체 음식점도 91년말 현재 8백70여군데로 늘어났다.

자전거로 붐비는 연변일보 건물앞 친선로 로터리에는 인력시장이 형성돼 허름한 차림의 노무자들이 서성거리고 있고 시장근처에선 달러를 인민폐(연길에선 인민페로 표기한다)로 바꿔주는 암달러상도 눈에 띈다.

인구 30만명에 1천여대로 인구당 비율이 중국최고라는 연길의 택시는 2∼3팀을 함께 태우면 곱절로 돈을 번다고 합승하는 경우도 잦다. 또 인구당 맥주소비량 매대(점포)숫자도 중국에서 첫 손가락에 꼽힌다.

4,5층짜리 건물이 밀집된 번화가에선 요즘 서울의 문화가 숨쉰다. 안마실 휴게실을 갖춘 사우나(상나욕) 5∼6개가 성업중이며 빠찡코기계가 수십대 설치된 777오락청 전자오락청 서울의 카페와 비슷한 커피청에 야총회(나이트클럽)가 30군데나 된다. 서울식으로 불고기를 직접 구워 먹는 식당도 많으면 연길중심상장 3층매장 등에선 레스모아구두 전기밥동 등 한국상품이 잘 팔린다.

연길의 서울과 닮은꼴은 밤에 더 잘 볼수 있다. 겨울의 연길은 하오 4시만 되면 어두워져 작은 전구를 수십개 이은 전깃줄로 입구를 요란하게 장식한 식당 야총회를 가라오케 등이 영업을 시작한다. 여러개의 칸막이로 나뉘어진 식당 곳곳에서는 술취한 목소리의 「신사동 그사람」 「사랑의 미로」 등 한국유행가가 정취있게 들린다. 여름철에는 길거리에서 화면을 보며 노래부르는 거리의 노천 가라오케가 붐빈다.

한 가라오케업소에서 만난 김모씨(23)는 『친구 3명과 함께 와 1백원(1만5천원가량)을 썼다』며 『한달노임의 절반이 넘지만 다들 그런다』고 말했다.

시내에서 가장 크다는 려도 나이트클럽은 1천여평에 6백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 분수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이곳에서는 러시아 여성합창단의 공연,러시아 사교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기분을 냈다 하면 한달 노임이 날아가는데도 연길의 밤은 이렇게 흥청거린다.

연길시의 이같은 흥청거림이나 활기는 개혁개방·경재개발의 가속화와 인구 30만중 6만명 가량이 한국에 다녀오면서 서울문화가 유입됐기 때문이다.

시정부도 삼자사업육성 국제공항건설 두만강개발 등 경제개발을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박동규시장은 『연길시를 두만강유역 개발 등을 통해 동북아 공업 무역 관광의 중심도시로 개발할 계획』이라며 『한국경제를 모델로 삼아 효율적이고 능률적인 개발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특히 삼성그룹에 연길공항의 확장공사를 발주한데 이어 연 10만∼15만대 규모의 한국산 자동차 조립공장 건설과 대규모 공단을 조성,한국 중소기업들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한국식 경제개발붐에다 한국을 다녀온 사람들에의해 이곳 연길에서도 1억∼2억달러 가량이 유입돼 경기를 흥청거리게 하고 있다.서울에 다녀온 사람중에는 서울의 사우나 가라오케 오락실 음식점 등 소비문화를 들여와 영업하는 사람이 많다.

식당을 하는 김모씨(43·여)는 『이곳에서는 서울식이라면 무조건 유행한다』며 『지난번 한국방문때는 별로 하는 일없이 시간을 보냈으나 내년에 새로 가면 서울음식점에 취직,많이 배워와 서울식 식당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호프집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장모씨(57)도 『한국에 다시 가서 호프집 운영을 공부한 다음 서울식으로 호프집을 꾸리면 큰 돈을 벌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다녀온 사람이 많아지면서 발음도 서울말씨와 닮아가고 있으며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 상당히 자유스러워지고 있다.

여도 나이트클럽의 가수 한모양(24)은 『지금상태가 좋다. 당분간 결혼하지 않고 자유스럽게 살고 싶다』며 비교적 서울발음과 비슷한 억양으로 말했다.

한국과의 합작회사에 다니는 최문희양(24)은 『한벌에 2백∼3백원인 한국산 옷을 사입는게 부러움이나 유행이되고 있다』고 거센 서울바람을 설명했다.

그러나 생산적인 경제활동이 뒷받침되지 않은채 소비·향락산업이 번창함에 따른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이곳의 식자층은 『연변은 하체가 부실한채 머리만 커진 기형도시』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곳에와 건강음료 공장을 건설중인 박근엽씨(48)는 『연길을 보면 서울의 축소판같다』며 『이곳 사람들이 억척같은 한국의 기업정신,수출입국의 왕성한 생산활동 등은 거의 배우지 못한채 향락문화,소비문화부터 받아들인 것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동북 조선과학기술 신문사 황상규부사장(37)도 『연길시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공업위주의 산업체제 구축이 시급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49년 중공 건국당시 5만2천7백86명에 불과했던 연길시의 인구는 91년말 현재 29만3천6백22명으로 6배이상이 됐고 82년이후엔 도시진출 욕구로 인해 해마다 1만명 이상씩 늘어 행정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총면적 1천3백40㎢에 조선족 등 13개 민족이 살고 있으나 전체 구성원중 조선족의 비율은 91년말 현재 60.8%로 비중이 점차 낮아지는 추세이다.

연길시 정부가 만든 소개자료는 연길을 아름다운 변강도시 이자 신흥공업 무역도시,백의동포의 민족특색이 짙은 문화도시인 동시에 「흡인력과 복사력을 갖춘 개방도시」라고 소개하고 있다.

「작은 서울」 연길이 부작용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복사력을 충분히 살려 동북아의 성장거점 도시로 발전할지 아니면 한갓 소비도시로 정착될지가 앞으로의 관심사이다.

□특별 취재반

▲임철순:사회부차장

▲강진순:사회부기자

▲조상욱:국제부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