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학자 존 갈브레이스는 「불확실성의 시대」란 저서속에서 스위스 민주제도의 힘의 원천을 3가지로 꼽고있다.첫째 스위스인들은 투표결과에 끝까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치가 국민들의 뜻을 저버릴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공동체의식이다. 특정한 이득을 위해서 사회전체가 희생되는 것이라면 손실이 너무 크다는 것을 스위스인들은 너무나 잘 안다. 때문에 공동체 즉 국가와 사회의 이익은 개인이나 당파 혹은 조직의 이익에 우선한다는데 국민적 합의가 잘 이뤄진다고 한다.
셋째 스위스인들은 공리공론적인 원칙보다는 실제의 결과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이러한 정신이 명분보다 실리를 앞세우게되어 타협정치의 원동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우리 유권자들의 투표행태,더 넓게는 정치의식에 관하여 학자들이 조사·분석한 내용들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같다.
첫째로 자기의 확신이나 관심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여 투표하기보다는 권위에 대한 복종심,국가권력에 대한 무조건적 추종심이 정치행태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상황에 따른 자극 또는 집단압력에 반응하여 투표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둘째는 정치인들이 부추긴 지역간의 대립의식 즉 지역감정에 맹목적으로 좌우되어 투표하는 현상을 드러냈다. 예컨대 건국후 5·16 군사혁명까지,특히 56년의 3대 대통령선거와 5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여촌야도 현상을 현저하게 보였다.
63년 5대 대통령선거에서는 표의 남북현상이 나타났다. 그후 67년 6대,71년 7대,87년 13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뿌리깊은 지역감정의 표출이라고 할 표의 동·서대립 양상을 드러내왔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투표를 하게 되는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이나 투표행태에서 이같은 전통적 성향이 그대로 표출된다고 볼수 있을까. 아마도 그러한 대입공식이 맞아 떨어지기에는 상황이 너무 판이하고 유권자들의 정치의식 또한 달라진 점이 너무 많아 이제까지의 경험론적 정치학 저술은 고전으로 밀려나야 하지 않을까한다.
이번 대선에서는 유권자의 투표행태에 압력을 가할 만한 기존의 권위나 여당으로 대변될만한 국가권력의 행사가 없어졌다는 상황을 들수 있다. 쉽게 말하면 여야 대결상황이 아니었다.
그로인해 대선에서 두드러진 이슈가 없었다. 굳이 핵심적 이슈를 찾자면 「경제를 되살리는 일」이라 해야겠지만,그또한 어느 후보의 전유물이 됐다고 할수는 없었다.
지역감정이 이번 선거에서 어느정도 다시살아날 것이냐가 표의 향방을 크게 좌우할 수 있을 것으로 볼수도 있겠지만,그보다는 차라리 유권자의 56%를 점하면서도 무주공산인 수도권의 44.4%(서울 24.1% 경기 14.7% 인천 4.6%)와 TK권의 11.6%(대구 5% 경북 6.6%)란 압도적인 유권자들이 어느 후보에게 쏠리느냐가 승패를 가르는 새로운 척도가 되지않을까 한다. 어찌됐든 결과야 24시간후면 판명이 날 것이다.
오늘은 2천9백42만 유권자들이 빠짐없이 투표장에 나가 신성한 책무를 행사해야 한다. 『나의 한표쯤이야 어떻겠느냐』는 정치무관심으로해서 기권하는 행위야말로 이나라 정치발전을 근본적으로 저해하고,정치적 부패를 눈감겠다는 무책임한 행위다.
누구를 뽑느냐는 것도 중요하지만 뽑힌 대통령에게 유권자가 감시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고있다는 표의 압력을 보여주는 것이야 말로 유권자의 책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게 될때 비로소 우리의 정치도 스위스처럼 보다 성숙한 민주화와 선진화를 이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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