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효과 치중 「미디어쇼」 변질/1천여 보도진 몰려 연일 생중계/“숭고한 인류애가 서커스로 전락”【파리=한기봉특파원】 소말리아를 기아에서 구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대규모 군사개입은 휴머니즘 차원에서 국제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숭고한 행동이 너무 전시적인 양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도 한편에서 제기되고 있다.
9일 새벽 1시(현지시간) 야음을 이용해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 해안에 상륙한 2천여명의 미 해병을 맞은 사람은 수백명의 보도진 뿐이었다. 적군의 총대신 TV와 카메라의 휘황한 라이트가 해안을 겨냥했다. 바로 워싱턴의 저녁 황금뉴스 시간대였다. 상륙작전은 전세계에 생중계됐다.
자신들앞에 일어날 일을 모르고 있던 사람은 병사들 뿐이었다. 얼굴을 까만칠로 위장한 미 해병대 게릴라부대(SEAL) 병사들은 카메라와 TV의 조명속에서 해안을 포복하며 상륙작전을 완수했다.
당황하고 화가 난 일부 병사들은 기자들을 땅바닥에 꿇리고 총을 겨누며 신원을 확인하기도 했다. 등에는 장비를 짊어지고 어둠속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보도진의 모습은 군인들에게 마치 게릴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다소 희화적인 장면은 이번 군사개입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이해가 계산되지 않은 순수한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할리우드적쇼」 같았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미 국방부는 미 언론에 대해 상륙작전 취재를 통제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그러나 현지의 미국 관리들은 상륙 전날 기자회견에서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거의 공개하다시피 했고 보도진들은 별 통제없이 아예 텐트를 치고 대기하기까지 했다.
걸프전에서와 달리 보안상 이유가 특별하지 않다는 이유로 보도의 사전 검열도 폐지됐다.
적의 위험은 물론 사실상 적의 존재도 없는 총성없는 이번 작전을 취재하기 위해 모가디슈에는 1천여명의 서방 보도진이 운집했다. 미국의 CNN 등 유수한 언론사는 비행기를 전세내왔고 댄래더 등 인기 앵커들이 총집합,연일 생중계를 하고 있다.
유럽 언론은 물론 미국 언론들조차 이를 두고 「국제적인 미디어 이벤트」 「펜타곤이 연출한 자선쇼」라고 지적했다.
프랑스의 르몽지는 「군사역사상 가장 미디어적인 상륙작전」이라는 제목하에 『할리우드적인 스펙터클이 연출됐다』고 꼬집었다. 프랑스의 제1야당인 공화국 연합의 알랭 주페 사무총장은 한마디로 「서커스」라고 논평하고 『프랑스가 이같은 국제적 미디어쇼에 군대를 보낸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30여만명이 굶주림과 내전으로 사망하고 1백여만명 이상이 아사위기에 처한 소말리아의 참상은 서방의 근본적인 해결노력이 지연될수록 세계 여론의 초점이 돼왔다. 그만큼 이번 군사개입은 더욱 극적인 요소를 주고 있다.
그러나 극적인 면만 부각됨으로써 사실상 서방의 지원이 너무 늦었다는 본질적인 비판의 목소리는 무시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당초 소말리아 문제해결 방식을 놓고 소극적이었던 서방 각국은 미국이 갑작스럽게 대규모 군사개입을 선언하자 뒤늦게 참여를 결정했다.
지금까지 세계 35개국이 군사적,또는 경제지원을 결정,서방의 단합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는 상대적으로 이에 못지 않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는 보스니아 사태해결에 대한 서방의 의지 결여가 비판을 받는 계기가 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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