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3주동안 전국을 들끓게 하고 있는 대통령선거운동의 양상을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그래도 이번에는 국민소득 6천달러중진국 수준에 맞는 그런대로 멋진 경쟁을 고대했지만 정책대결은 행방불명된채 상대방 깎아내리기,약점들추기,선물돌리기,거짓약속하기 등만 난무하고 있다.
더구나 투표일을 닷새 앞두고 진작부터 필자가 우려했던 일들이 어김없이 고개를 들고 있다. 흑색선전·물품공세·중대선언과 세끌어모으기 등. 결국 후보와 정당들간의 쟁점논쟁은 없고 감정대결과 탈법 경쟁만이 판을 치고 있다. 물론 긍정적인 면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관권개입이 크게 줄고 지역감정이 어느정도 가라앉았으며 5년전에 비해 과열분위기가 덜한 것 등은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공명선거의 성패여부는 남은 며칠사이에 달려있다. 대선을 결정적으로 뒤흔들거나 망치게 할 요인들이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투표일 하루 이틀전에 대대적으로 돈봉투를 뿌리는 것. 시계·볼펜·파카·넥타이 등보다 표를 잡는데는 현금 이상의 명약이 없다고 보고 현금 박치기돈봉투의 융단폭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메가폰급의 흑색선전과 루머,즉 경쟁후보의 허위 여성관계와 부정스캔들을 퍼뜨리는 것. 셋째는 후보와 관련된 위장된 자작사고,테러를 당한 것 같은 사고를 꾸미는 것이다. 이런 것들로 유권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동정표를 구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남은 5일간 유권자들은 어떠한 유혹이나 루머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한편 후보측으로서는 부동표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승패가 판가름날 것이다. 중앙선관위가 지난주 전문기관에 의뢰,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직도 찍을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유권자는 무려 38%로 드러났다. 원래 부동표의 속성은 말도,얼굴도,색깔도 없다.
부동표는 투표일전까지 후보와 정당의 정책·공약 등 모든 것을 종합분석한 후에 결심하는 신중형,주위의 분위기나 후보로부터의 선심 등의 혜택을 받으면 기우는 기회주의형,정치불신과 혐오증으로 아예 선거를 외면할 투표기피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선관위 조사에서 「투표하겠다」는 응답이 88.7%나 되는 것을 보면 투표기피형은 많지 않을듯하다.
어쨌든 부동표가 이처럼 많다는 것은 전적으로 후보와 정당에 책임이 있다. 그들을 아직까지 설득시키고 공감케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후보와 정당들은 참가운 개혁과 변화와 관련해서 그들에게 신뢰와 실천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필자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선거결과에 대한 낙선자들의 인정,승복문제다. 물론 최대한 선거의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하겠지만,1천만표 차로 이겼건 단 1표차로 이겼건 모두가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다. 하지만 우리의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패자가 패배를 인정한 예가 없었다. 선거 때마다 불법과 부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대세를 뒤바꿀 정도가 아니었음은 국민이 더 잘알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정치가 후진적인 수준을 벗지 못하는 것도 승복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기야 어느 후보는 지고나서도 『나야말로 진짜 당선된 정신적 대통령』이라고 선언했을 정도다.
지난 13대 대선 때는 1위인 노태우후보(36.6%)와 2위인 김영삼후보(28%)간의 표차는 1백95만표,3위인 김대중후보(27.1%)와는 2백17만표로 나타났다. 유권자가 2천9백42만여명인 이번 대선에서는 적어도 9백만∼9백50만표 이상을 얻고 또 2위와의 표차를 10% 이상 벌리면 어느 정도 쓸데없는 시비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2∼3%나 5% 이내의 표차로 결판이 날 경우 일부 낙선후보들이 무조건 「부정」이라고 물고 늘어질 여지가 다분히 있다. 적어도 민자 민주 국민당은 3후보중 낙선자들은 당연히 정치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국민적 정서에 아랑곳없이 장래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도 공연히 선거결과의 불인정 작전으로 나설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또 「박빙의 승리」는 낙선자들의 부질없는 생트집의 구실이 될 뿐이 아니라 「당선자 흔들기」로 새 정권의 불안정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는 모두가 최대한 공정한 운동을 한뒤 생트집하는 일이 없이 무조건 결과에 승복하는 멋진 선례를 이룩해야 한다. 만의 하나 어느 패자는 인정하지 않을 때 국민들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정신적 대통령을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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