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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2.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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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즉위 40주년 기념 만찬서 감기에 목이 잔뜩 잠긴 목소리로 92년을 끔찍한 해(Annus Horribilis)라고 개탄한 것은 보름쯤 전이었다. 영광스러운 즉위 40주년을 스스로 끔찍한 해라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매스컴의 폭로로 아들 딸 며느리들이 온통 난봉꾼,바람난 여자로 몰린데다가 별궁인 윈저성은 화재를 당했기 때문이다. ◆여왕의 개탄이후에도 끔찍한 일은 계속되었다. 윈저성 복구비를 정부가 부담하기로 하자 세계 여섯번째 재산가이면서 세금 한푼 안내는 여왕이 호사스런 별궁의 화재 수리비까지 가난한 국민의 주머니서 우려내려 한다는 비판이 일어 끝내는 면세특권을 포기하고야 말았고 두자녀는 두고 이혼한 외동딸 앤공주는 8개월만에 5세 연하인 전 시종무관과 재혼을 밝혔다. ◆그러나 여왕에게 있어서 끔찍한 해의 가장 끔찍한 일은 찰스왕세자 부부의 별거 발표일 것이다. 다이애나왕세자비는 현 거처인 켄싱턴궁에 그대로 남고 찰스왕세자가 할머니인 엘리자베스 모후의 거처로 옮기는 이들의 별거는 법적인 수속만 거치지 않았을 뿐 사실혼관계의 단절로 재결합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 결국 지난달 이들의 공식 한국방문은 마지막 별거여행이 된 셈이다. ◆통상적으로 왕실의 동정은 버킹검궁 대변인이 발표하여 왔으나 사안이 워낙 중요하기 때문인지 여왕의 면세특권 포기와 왕세자 부부의 별거는 이례적으로 메이저 총리가 하원서 직접 발표하고 배경을 설명했는데 총리가 왕실 동정을 발표하기는 1936년 에드워드 8세(윈저공) 퇴위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메이저 총리는 이들의 이혼 가능성을 일축하고 찰스왕세자의 왕위계승도 지장없을 것이라고 확인했지만 이들의 별거가 별거에 그치지 않고 이혼→왕위계승권 포기까지 비화될 것이라는 우려 뿐만 아니라 영국의 왕제가 엘리자베스여왕을 마지막으로 끝날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결과는 왕제폐지 찬성이 처음으로 두자리수를 넘어 14%까지 올랐다고 하니 영국 왕실의 영화에도 황혼이 깃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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