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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나들이/중국조선족(더 가까워진 2백만동포의 어제와 오늘: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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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나들이/중국조선족(더 가까워진 2백만동포의 어제와 오늘:14)

입력
1992.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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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일자리」 찾아 서울로… 서울로…/“돈벌러 가자” 84년이후 26만명 몰려/공사장·식당등서 고된일 서슴없이/일부는 야박한 모국인심에 「잘살기꿈」좌절 아픔도서울 탑골공원 후문과 파고다극장 사이의 공터. 두툼하게 옷을 껴입은 30∼40대 중국 동포여성 10여명이 좌판에 한약을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 노점상중 연길에서 온 이모씨(38)는 벌써 1년째 불법 체류중인 이곳의 터줏대감이다. 이씨는 남보기가 부끄러워 가만히 앉아있거나 서있는 다른 여인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손님을 끌기까지 한다.

이씨의 남편은 중국과 무역을 하는 중소기업에서 번역업무를 맡고 있는 「사무직원」이다. 둘이서 버는 돈이 많을때는 한달에 1백70만원가량 된다.

이씨는 『있을 수만 있다면 장기 체류하고 싶다』며 『이 기회에 돈을 많이 벌어가겠다』고 말한다.

이씨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약장사를 하는 동포여성들은 혼자 와있거나 남편이 먼 공사현장에서 숙식을 하기 때문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날씨가 추운 요즘엔 하오 5시께만 되면 전을 거두고 대우빌딩 뒤의 숙소로 돌아가 저녁을 때운뒤 서울역 지하도에 몰려든다. 퇴근한 샐러리맨들이 기웃거리다 간뒤 인 밤 10시께면 큰 포대나 보따리에 한약을 담아 숙소로 돌아간다. 이들의 일과는 매일 이렇게 반복된다.

서울역 지하도는 단순히 약을 파는 장소가 아니라 일자리를 구하고 연락을 취하는 만남의 장소이다. 윤락촌으로 알려졌던 대우빌딩 뒤편의 후암동 주변은 이들의 집단 투숙처로 변했다. 이 여인숙촌의 방값은 하루 6천∼8천원,한달에 10만원 안팎인데 보통 2∼3명이 함께 투숙하므로 1인당 4만∼5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중국 동포들은 이곳 이외에 염천교 뒤나 동대문부근 청량리 보문동 등 방값이 싼 지역에 주로 모여있다.

가구래야 누더기 같은 이불,취사용 가스버너나 전기밥통이 전부이지만 돈을 번 사람들중에는 전화를 설치한 경우도 있다. 연길에서 온 이모씨(40·여)는 『한국인 고객이 많다. 요즘은 전화로도 한약거래를 한다』며 스스럼없이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돈버는 양태도 달라지고 있다. 남자들은 대부분이 일당을 받고 공사판에서 품을 판다. 일산 신도시 신축공사장에서 일하는 김모씨(34·연길)는 『힘들지만 일당 4만원이나 돼 단기간에 돈을 모을 수 있고 숙식도 해결된다』며 『4만원이면 중국 한달월급』이라고 말했다.

가지고 온 한약을 직접 팔지 않고 먼저 서울에 와있는 사람들에게 3∼5배의 값을 받고 도매로 넘긴뒤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여자들은 주로 약장사를 하거나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지만 요즘엔 술집이나 윤락업소에도 진출했다. 흑룡강성 하얼빈에서 온 조모양(22)은 여의도의 K비디오케에서 4개월째 비디오판을 나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손님들의 청에 의해 술을 마시기도 한다. 『바람 안피우고 나만 알아주는 한국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 조양의 수줍은 꿈이다.

중국 조선족은 고향과 친척,돈을 찾아 한국에 온다. 법무부 통계에 의하면 84년 4백90명을 시작으로 91년말까지 20만6천1백38명이 입국했고 92년에는 10월까지에만 6만여명이 입국했다. 연인원으로 따져보면 2백만명중 13% 가량이 이미 한국나들이를 한 셈이다.

그들은 돈을 벌고 장사를 하기 위해 러시아 몽골 일본 동남아 등 여러나라에 나가고 있으나 동포들이 사는 땅 한국,한국에서도 서울을 가장 오고 싶어 한다.

법무부가 지난 8월 실시한 불법체류 외국인 자진신고에서는 2만2천여명의 중국교포가 신고를 했으나 실제 불법체류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 중국동포들의 입국이 증가하면서 한약재 파동 불법취업 마약밀반입 등 사회문제가 심각해져 법무부가 92년6월 입국요건을 강화함에 따라 입국자는 서서히 감소하는 추세다.

그러나 요즘도 매주 1천∼2천여명이 인천항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으며 지난달 30일에는 법무부 서울출입국 사무소에 수용됐던 중국교포 17명이 집단 탈주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대부분의 중국 조선족은 입국할 때 비행기보다 열차나 배를 이용한다.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오는 경우 대연까지 24시간동안 열차를 타고 위해까지 배로 와 이곳에서 인천까지 주 2회 운항하는 여객선을 타는데 각 교통편의 시간을 맞추다보면 5일이 걸린다.

한국 등지에서 돈을 벌어간 사람들은 집을 고치거나 치장하고 은행에 넣은채 쓰지 않거나 택시를 구입,운전사를 고용해 돈을 벌곤 한다.

아직 한국나들이를 못한 사람들은 『약팔고 품팔더니 이제는 몸까지 판다』고 질시하면서도 부러워하고 있다.

용접기술을 가진 연길의 최모씨(34)는 부부가 서울살이를 한 14개월동안 평생 만져보지 못할 1천만원을 벌었다. 최씨는 이때 알게 된 서울의 자동차정비공장 회장이 중국에 올때마다 통역안내를 해주면서 용돈을 받고 있다. 8남매중 독자인 최씨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다.

연길의 한의사 허모씨(57)는 지난해 서울에 머문 6개월동안에 1만원(한화 1백50만원 상당)을 저축했다가 올해 8월 아들을 장가보냈다.

하얼빈의 한 회사에서 운전사로 근무중인 이모씨(31)는 91년에 서울에 가있는 3개월동안 영동 룸살롱에서 술취한 손님들을 집에까지 태워다두는 일을 하면서 지리에 어둡고 우리말도 서툴러 애를 먹었다. 그러나 기회만 있으면 다시 가고 싶어한다.

도문에 사는 택시운전사 김모씨(26)의 꿈은 한국에 가서 태권도를 배우는 것. 지난해 출국수속중 팔뚝에 새긴 문신때문에 허가를 받지 못했지만 여비를 마련하려고 부지런히 부부가 돈을 모으고 있다.

중국 동포들이 돈을 벌기위해서만 한국에 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최근엔 사업·문화교류 등으로 입국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으며 일부이긴 하지만 모국을 알기위한 순수관광 방문자도 있다.

북경에 사는 구모씨(30·여)는 남편과 함께 4년동안 저축한 4천달러를 갖고 지난 11월 입국했다. 광명 부산 등지의 친척을 만났으나 이들의 신세를 지지않고 서울에서 하루 2만원씩 주고 여관생활을 한 구씨는 『물가가 너무 비싸 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들의 고국에 대한 첫 인상은 방문목적에 따라 크게 다르다. 하얼빈에서 온 남혁씨(38)는 『한국에 온 동포중 남자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대부부인데 거지취급 당하거나 건설현장에서 국민학교밖에 안나온 십장한테 욕설을 들을때는 비위가 상한다』며 『이럴 땐 돈이나 많이 벌어가겠다는 독한 마음밖에 안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포언론인 고국방문단원」으로 한국을 처음 찾은 이병태씨(42·북경는 『고국의 환대에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걸 느꼈다. 제품이나 도로,일정 등 모든게 합리적이고 정리가 잘 된 느낌』이라며 『다만 외래어가 알아보기 힘들만큼 많고 교통도 복잡하다』고 말했다. 세미나 참석차 두번째 서울을 찾은 연변사회과학원 최삼용원장(53)은 『언제나 느낌은 다르다. 서울은 약동하는 도시』라고 말했다.

불법체류자들은 모두가 「금의환향」의 꿈을 안고 현실의 어려움을 참아내고 있다. 서울 서초동의 모 불고기집에서 언니와 함께 일하는 오모양(22·연길)은 『돈을 벌어가 못다한 대학공부를 다하는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또 주영덕씨(32)는 연길에 돌아가면 원래 다니던 국제문화전파중심(센터)을 그만두고 사업을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씨는 『한국정부가 살수있게 허락하더라도 소외감을 느낄때가 많고 마음이 편치 못해 돈은 한국서 벌어 중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불법취업했던 동포들은 설렘을 안고 고국에 왔다가 소외감과 배신감속에서 귀국한다. 동포들은 대부분 한약판매에 대한 강경단속이나 출입국규제 강화에 『같은 동포로서 그럴 수 있느냐』고 분개한다.

더욱이 악덕업주들은 인건비가 싸고 상여금 의료보험료 부담이 없는 중국 동포들을 고용한뒤 불법취업자라고 경찰에 고발,노임도 주지 않은채 내쫓은뒤 새로 중국 교포를 고용하는 파렴치 행위까지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 8일 상오 11시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는 3백20여명의 중국 동포가 천진으로 가는 천천페리호를 타려고 출국수속을 밟고 있었다. 입국할 때 한약이 들어있던 보따리는 전자제품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같은 동포를 무시하고 고국의 몰인정에 넌덜머리가 났다』면서도 『기회만 있으면 다시 돈벌러 오겠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임철순 사회부차장 강진순 사회부기자 조상욱 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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