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돈이 남아돈다는데 정작 돈이 필요한 중소기업은 돈이 없어 쓰러져가고 있다. 중소기업을 도산직전에 몰리게한 정부의 정책 잘못을 내 한 목숨 버려 지적하고자 한다』「올해의 중소기업 대상」을 받은 한 유망 중소기업 사장의 죽음의 항변은 이 땅의 중소기업들의 역경의 현주소와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의 허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자살한 한국기체공업 대표 구천수씨(51)는 힙겹게 자금과 기술인력을 투입,제품의 자체 개발에 성공했으나 대기업이나 외국기업들의 신규 참여 또는 덤핑으로 판로를 찾지 못해 도산하는 유형의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기체공업은 자동차와 눈썰매에 들어가는 40여종의 충격 흡수장치를 생산하는 업체로 기아그룹에서 이사를 지냈던 구씨가 지난 89년 10월 설립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30억원이었고 자본금은 8억원 규모. 이 회사는 충격 완화장치인 가스식 충격흡입기의 국내 개발에 성공,지난 6월 국민은행으로부터 올해 처음 제정된 92년도 우수 중소기업 대상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회사로는 막대한 20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기술개발에 투자한데다가 개발된 가스식 충격흡수기가 고급 차종에만 사용돼 판매개척이 어려웠고 그나마 대기업이 새로 참여,판매난을 가중케 한 것이 도산을 몰아온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회사의 부채는 국민은행의 6억원 등 은행빚 50억원을 포함,70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구씨의 충격적인 자살사건이 보도된뒤 『한국기체공업은 병역특례업체,기술선진화업체,유망 중소기업 등으로 지정돼 중소기업 지원제도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업체중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으나 가족들은 『구씨가 은행으로부터 추가 대출받으려 했으나 기술과 신용이 뛰어난 업체인데도 담보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구씨는 유서에서 『기술·금융지원 제도의 모순성을 사회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자결한다』며 『정치·경제의 운영상태가 잘못됐다』고 정경체제와 제도를 비판했다.
사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의 기업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정부는 매년 중소기업 지원대책을 질적으로 개선하고 양적으로 팽창시키고 있으나 그 자체가 수요를 충족시키는데 부족할 뿐더러 제도적 또는 관행상의 제약이 산재,그 대책마저 원만히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 금융의 경우 정부에서 대출의무 비율제고,신용평가제 실시 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일선 은행창구에서는 담보요구의 소위 전당포 금융이 엄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유망한 품목을 막대한 돈을 들여 개발하면 신규 참여 대기업과의 경쟁으로 고전하거나 아니면 흡수,통합된다. 대기업과의 계열화에 성공하면 그래도 생존의 길이 열리나 대금지불 등에서의 불리한 조건을 수용해야 한다. 중소기업들은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열등한 지위를 감수해야 한다. 그나마도 지연,학연,혈연 등 각종 연줄이나 금전수수가 없으면 사업의 영위가 불가능하다. 한국 중소기업들의 기업환경은 「적대적이다」할 정도로 나쁘다. 정부·재벌기업들은 중소기업이 한국경제의 초석이라고 말한다. 이제 할 일은 획기적인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마련,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여기에서도 변혁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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