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한 대선의 회오리속에서 한 중소기업인의 죽음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지난 8일 서울 남산 중턱 소나무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국기체공업(주) 대표 구천수씨가 남긴 유서는 이 땅의 중소기업인들의 한을 담은 유언장이나 다름없었다. 「국가를 운영해가는 정치,경제,행정의 간부들에게」 남긴 유서에 그는 절박한 필치로 『신기술개발을 위해 전력을 다해온 중소기업을 외면해 쓰러지게 하는 기술·경제·금융제도의 모순성,그리고 주객을 가리지 못하는 정치·경제의 운영상태를 공개하기 위해 자결을 결정했다』고 썼다.
이 유서의 주인공이 남다른 기술개발로 국민은행이 지난 6월에 제정한 「우수 중소기업 대상」에서 최고상인 금상(상공부장관상)을 수상한 전도유망한 중소기업인이었다는 점에서 그가 남긴 한마디 한마디는 피맺힌 절규로 울려퍼지고 있다.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자동차의 충격흡수장치인 가스압소버를 자체 개발,지난해 3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데 이어 올해 매출목표를 1백억원으로 잡을 만큼 탄탄대로를 걸어온 그가 대부분의 도산 중소기업이 그러하듯 국내판로를 찾지 못하고 자금난이라는 벽을 넘지 못한채 꺾이고 말았다는 사실은 중소기업을 위한 우리의 토양이 얼마나 척박한지를 새삼 절감케 한다.
구씨의 기업이 부도를 맞게 된 이유중에는 그가 사업을 너무 성급하게 확장했다거나 판로를 미리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지만 그의 죽음은 이 땅에서 중소기업이 뿌리를 내리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정당은 정당대로,정부는 정부대로,금융기관은 금융기관대로 중소기업을 위한 공약과 시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대선을 앞둔 각정당의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공약을 제쳐놓고라도 정부의 중소기업 시책대로라면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의 천국이 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하루에 29개꼴로 중소기업이 쓰러지고 있고 목숨을 끊는 중소기업인까지 나타나고 있다.
「중소기업」을 구두선처럼 외치는 정책의 홍수속에서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한발을 겪는 것은 왜 일까.
중소기업인들은 그의 죽음이 올바른 중소기업 정책을 위한 밀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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