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적 정치·경제개혁 물거품 위기인도 유혈종교분쟁의 수습책임을 떠맡은 나라시마 라오 인도총리(71)는 사면초가에 빠져있다. 바브라 마스지드 회교사원의 파괴행위로 촉발된 유혈사태가 인도는 물론 인근 회교권국가로 확산되면서 그는 조기퇴진 및 총선실시 압력을 받고 있다. 특히 「과도총리」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해오던 정치·경제개혁이 이번 사태로 물거품이 될 공산이 커졌다.
라오 총리는 이같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제1야당인 바라티야 자나타당(인도인민당)의 총리후보인 랄크리샤나 아드바니 등 힌두교지도자 8명을 이번 사태의 배후선동 혐의로 체포하는 등 강공책을 쓰고 있지만 당장 사태가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힌두벨트」라는 북부 아성의 전통을 깨고 남부지역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인도총리가 된 그는 인도 사성중 최고 계급인 브라만 출신으로 식민지 해방운동을 벌이면서 정계에 임문한 인물이다. 인도 독립 1세대 정치인인 그는 독립후 안드라 프라데시주의회에서 20여년간 활동했다. 그는 중앙정계로 진출한 때는 77년.
인디라 간디여사가 총선패배로 의원직과 총리직을 상실하고 국민의회당이 최악의 상황에 빠졌던 시기였다.
인디라 간디여사가 80년 재집권하면서 중용된 그는 외무 내무 국방장관 등 요직을 거쳐 88년에는 두번째로 외무장관에 임명되었다. 그는 한때 라지브간디의 젊은 측근세력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한직인 인력관리부 장관으로 밀려나기도 했지만 간디 전 총리가 암살되자 91년 6월 21일 총리에 취임했다.
총리선출당시 정치분석가들은 라오 총리가 난세를 이끌어 나가기에는 지도력이 부족하며 대중적인 지지기반이 취약하여 「과도기적 역할」에 머물 공산이 크다고 부석했다.
또한 중요한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할 때 항상 흔들리다는 점이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번 아요디아시 회교 사원의 파괴사건과 유혈 종교폭동의 간접적인 요인도 라오 총리의 이같은 우유부단함에 기인하고 있다. 라오 총리가 바브라 마스지드회교사원부지에 대한 소유권문제를 법정판결에 맡김으로써 사태개입을 꺼려온 것이 이번 유혈종교 분쟁의 불씨를 남겨놓았던 것이다.
이번 사태는 인도의 인종·종교적 마찰해소와 경제적 낙후성 극복을 꾀하고 있는 라오 총리의 노력에 치명타를 안겨주었다.
인접국인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로 확산되고 있는 힌두교와 회교도간 유혈분쟁의 「태풍의 눈」에서 조기에 벗어나지 못할 경우 이들 회교국은 물론 중동산유국과의 관계악화로 인도경제개혁의 「혈액」이랄 수 있는 원유확보마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번과 같은 유혈폭동이 계속되는 경우 외국자본의 장기유치에도 차질을 빚어 경제개혁 전반에 타격을 입게 될게 뻔하다.
이번 사태는 40여년에 걸친 사회주의 경제의 옷을 벗어던지고 8억5천만 인구의 인도에 경제기적을 구현하려던 라오 총리에게 최대의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박희정기자>박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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