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일을 불과 열이틀 남겨둔 대통령선거전 양상이 돌연 심상치 않은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정부는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불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했거나 기업자금이 국민당에 유출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를 진행중이다. 경찰의 기습적인 압수 수색과 함께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시작됐으며,은행감독원은 별도로 전체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특검을 실시,기업자금의 선거자금화 차단에 나섰다. 공명과 엄정중립을 표방해온 현승종 내각이 선거관리 중립내각의 모든 것을 걸고 한 재벌그룹의 선거개입 저지에 나섰다는 인상이다. 취임후 첫 지방순회중인 현 총리도 금권선거에 대한 강력한 척결의지를 연일 천명하고 있다.우리는 정부의 이같은 총력적인 조치가 몰아올 정치·경제적인 파상을 우려하기에 앞서,금권선거를 추방하겠다는 중립내각의 결연한 의지와 노력에 대해 평가하고자 한다.
관권의 선거개입이 오랜 고질이었던 우리 헌정사에서 모처럼 관권이 물러가는 자리에 금권이 새롭게 등장하고 선거를 혼탁하게 하는 것을 차단하지 못한다면,공명선거의 성취는 한갓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의 이번 전면적인 수사가 특정정당에 대한 탄압이라는 있을 수 있는 오해와 그로인한 동정표의 가능성까지도 무릅쓴 결정이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공명선거를 위해서라면 그것이 누구의 행위이든 불법에 대해 단호하고 엄중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뜻에서 우리는 법의 집행과 정부의 대응이 공평무사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금권선거에 대한 시비가 현대 직원과 조직을 동원한 국민당의 선거운동에서 집중적으로 촉발되었음이 사실이지만 다른 정당에서도 같은 시비가 심심찮게 폭로되고 보도돼온 것이다. 예를 들것도 없이,민자당의 「03시계」 소동이나 입당 지원금사례,사조직의 탈법운동 양상과 그것들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대해 국민들은 의혹을 품고 있으며,국민당이 폭로하고 있는 안기부 관련 금권선거 시비도 납득할만한 해명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는 기업이 정치에 휘말릴 때 어떤 불행을 겪는지,짧지 않은 헌정사를 통해 많은 사례를 보아왔다. 기업에게는 기업의 길이 있고 정당에게는 정당의 길이 따로 있어야 한다. 정경이 한몸이 되는 일은 비록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하더라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현대 직원들의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이 진작부터 우려의 시선을 보내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은 투표일이 임박한 긴장된 시기이다. 정당마다 필사적인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는 때에 정부의 수사가 시작되었고,앞으로 또 어떤 갈등과 마찰이 돌출될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이번 수사가 몰고 올 정치·경제적인 충격이 우리가 국민적 합의로써 모처럼 추구하고 있는 공명선거의 성취에 장애가 되거나 득표에 영향을 미치는 사태를 초래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기업과 정당,정부와 국민 모두가 새롭게 공명의지를 다짐하는 계기로 승화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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