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부는 미국,일본 등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보수성이 강하다. 한국의 재무부도 이 점에서 어느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건전한 보수성은 장려돼야 한다. 재정,금융을 관장하는 재무부의 정책이 가볍게 변한다면 경제정책의 안정성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성이 영역을 지키기 위한,바꿔말해서 부처이기주의를 지키기 위한 탐욕적 아집이라면 그것은 「보수성」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명예로운 의미를 타락시키는 것이다.
이용만 재무장관은 지난 3일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뒤 위원들을 서울 프라자호텔로 초청,최근 한국은행의 재할인 금리인하를 두고 조순 한은 총재와 가졌던 갈등에 대해 설명을 하고난뒤 『이와같은 불협화음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의장자격으로 참여,회의를 직접 주재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법률적으로 보면 이 재무의 발언에는 하등 모순이 없다. 한은법상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신용정책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는 기관으로서 한은의 업무를 지휘,감독하게 돼있다. 또한 금통위 의장은 재무장관이 맡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재무장관은 참석치 않고 한은 총재가 의장대리로서 금통위 회의를 주재해왔던 것이다. 이처럼 한은 총재가 대행해도 재무부장관은 금통위에 지시함으로써 그의 의사대로 금융정책을 이끌어 가는데 하등의 지장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재무의 금통위 회의 직접 주재발언은 한은 총재가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으니 직접 나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이 내포돼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재무의 이러한 강경자세는 금통위의 운영방식과 관련하여 재무부와 한은이 89년에 합의했던 관행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이 한은측의 해석이다.
당시 재무부와 한은은 금통위의 자율적 운영에 도움을 주기 위해 재무장관이 위원장으로 돼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한은 총재가 회의를 주재한다는데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은은 독립성 보장요구에서 한 발짝 물러났었다는 것이다. 재무부와 한은은 일종의 「신사협정」을 맺었고 지금까지는 잘 지켜져 왔던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한은은 재무부의 하부기관 역할 밖에 하지 못했다. 70년대 초반이후부터 한은은 재무부의 강력한 지배아래 들어가 종속관계를 뿌리내렸던 것이다. 조순 한은 총재의 이번 재할인 금리인하 반대는 한은이 최근들어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낸 것이다.
한은은 진작 제 목소리를 찾았어야 했다. 정부가 찾도록 도왔어야 했다. 금융자율화와 금리의 자유화가 우리 금융체제가 서둘러 가야할 목표라면 한국은행의 독립성도 서둘러 보장해줘야 한다. 재무장관의 금통위 회의 직접 주재가 「힘겨루기」로 추진되는 것이라면 그것처럼 시대착오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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