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다이내믹… 유세방법은 미숙/미디어시대 TV토론은 당연『일본의 정치는 썩었다. 자민당의 지배체제가 40년 가까이 계속되어온 어떤 문제가 생겨도 결국은 흐지부지되고 만다. 선거를 치르더라도 국회의원수는 바뀌지만 자민당 체제는 계속된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한국은 일본보다 확실히 민주적이다. 정권을 바꿀 수 있으니까』
일본의 한 신문사의 젊은 정치부 기자가 최근 서울을 방문,술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때의 일이다. 그는 최근의 일본 정치상황을 설명한후 이렇게 말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일본의 정국은 지금 거대 여당인 자민당의 의원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받은 「사가와규빈(좌천급편)사건」으로 술렁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정계의 거물인 가네마루신(김환신)이 폭력단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는 등 정국은 큰 혼란에 빠져 있다.
내각제 원칙아래 국회의원이 수상을 선출하는 일본,국민의 직접투표로 대통령을 뽑는 한국.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 배경이나 국민의식,행정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정치상황을 단순비교해 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앞서 말한 기자처럼 국민의 의사가 직접 반영되는 한국에 매력을 느끼는 일본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한국에서 근무한지도 1년이 지났지만,한국정치를 취재하며 많이 느낀 것은 「정치의 젊음」이다. 「정치의 다이내미즘」이라고 바꿔말해도 좋을듯하다.
노태우대통령 정권이 민주화를 캐치프레이즈로 출범한후 지난 5년을 돌이켜보면 5공 비리공방,전격적인 3당 합당,민자당의 수많은 내분 등 정치의 움직임은 어지러울 정도로 다이내믹하다는 말이 가장 어울릴듯하다.
한국정치가 젊고 다이내믹한 가장 큰 이유는 독재에서 민주로의 과도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짊어졌던 과제는 독재체제의 틀을 민주체제의 틀로 바꾸는 것이었다. 민주정치라는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힘든 작업이며,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논의가 일어나 정계재편이 일어난 것은 당연했다.
흔히,「젊음의 정치」는 다이내믹하다는 장점이 있는 동시에 미성숙하다는 단점도 함께 갖게 마련이다.
노 대통령의 「9·18 중립선언」도 한예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선거중립이라는 입장을 취하는 것은 내각제하에서 명목상 대통령이 취할만한 행동이다. 대통령이 원래 정권교체기에서 행하는 것은 자신이 추진해온 정책을 차기 정권에서도 계속해서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최대 책무가 국가의 안정에 있다고 한다면,자신의 정책의 계속성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이는 차기정권의 탄생에의 책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 대통령의 결단은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사정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민주주의라는 원칙에서는 「도피 또는 무책임」쪽에 가깝다.
또한 노 대통령이 처남인 김복동의원을 공권력을 사용해서 「강제상경」시킨 것도 잘못된 판단의 한 예이다. 대통령은 『가족간의 일이다. 정치이전에 인륜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가가 국민의 부탁을 받고 국가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상 인륜 이전에 정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한국의 정치는 지금 선거가 한창인 때. 「이김일정」의 연설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 후보라도 공약은 훌륭하지만 실현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신한국의 창조」라는 것이 듣기에는 좋은 얘기이지만 신한국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떠한 나라인가.
「국민대화합」도 좋은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지역감정이 이처럼 심한데 어떻게 그것을 실현할 것인가.
「경제재건」은 당연히 하지 않으면 안될 책무이지만 정치경험·외교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추진해 갈 것인가.
선거유세에 있어서 단 한가지의 목적은 후보자가 어떤 인물이며 어느 정도의 정책수행능력이 있는가를 유권자에게 알리는데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선거유세에서는 이러한 공약실현의 방법론이 제시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한 장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정치가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미디어시대인 지금 TV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유권자에게 판단자료로서 각종 여론조사 결과도 발표되어야만 한다.
선거유세의 방법에 있어서도 단순히 후보가 연설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시민대화 형식의 유세가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선거유세의 현장에서는 각 후보의 미사여구만이 춤출뿐 현실적인 방법론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대다수의 유권자는 「표를 주고 싶은 인물이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이번 선거에서는 누가 당선되더라도 한국 헌정사상 최초의 「문민대통령」이 탄생된다. 그리고 21세기를 열게 되며 민족의 최대과제인 남북통일과 경제재건을 짊어지게 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이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한국은 지금의 젊음을 어떻게 유지하면서 안정의 길을 찾을 것인가.
바꿔 말해서 일본처럼 안정을 구축하는 가운데 부패가 발생하는 것과 같은 방향으로 갈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엄정한 민주주의의 틀을 확립하고 다이내미즘을 살려가면서 정치가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
그 방향을 정하는 것은 한국 유권자들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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