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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끝까지 서두나/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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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끝까지 서두나/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2.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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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사흘에 걸쳤던 주요 3당 대통령후보들의 관훈클럽 특별회견이 끝났다. 굳이 후보별 평점을 매기기는 어렵겠으나,세후보의 각기 다른 스타일은 십분 표백됐다고 할 수가 있다.질문중에는 제법 까다롭고,거북한 물음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 질문들은 대개 세 후보의 「약점」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민자당 김영삼후보의 경우는 당 통합에 관련된 그의 정치행적,민주당 김대중후보의 경우는 남조선노동당 사건과,전국련과의 정책연합에 관련된 그의 색깔문제,국민당 정주영후보의 경우는 그의 치부과정과 정경유착 등 도덕성 문제 등이다. 세 후보의 「약점」이 각기 다르니까,질문도 각기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질문중에는 세후보에게 다 주어진 공통문제도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대북정책­김일성에 대한 평가와 그를 상대로한 남·북 정상회담 전망에 관한 것이다.

질문 치고는 평범한 질문이지만,이에 대한 대답 역시 세후보의 스타일이 다름을 엿보게 한다.

신문에 보도된대로 하면,민자당 김 후보는 대단히 신중하다. 그는 정상회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만 언급하고,김일성에 대한 평가는 유보했다.

민주당 김 후보의 대답은 훨씬 분명하다. 그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은 인정하나,그의 치적은 논평할 가치가 없다고 했다. 그와의 정상회담을 서두를 것은 없으며,대남적화 정책의 포기(노동당 규약 개정)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국민당 정 후보 역시 생각은 비슷하나,투는 다르다. 정상회담은 중요한 문제이므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장기집권한 김일성은 정치적인 수가 높다­. 여기에는 그가 직접 만나본 김일성의 인상이 가미됐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하간 세 후보의 대답은 다 「정답」인 것 같다. 유권자들의 일반적인 대북 정서에 비추어 더욱 그러하다.

또 세후보의 「정상회담 신중론」이 정부의 지금 대북 자세를 비판하는 바탕위에 있음도 분명하다. 그 사이 6공 정부가 정상회담을 너무 서둘렀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것은 정부가 정상회담에 집착한 나머지,이랬다 저랬다,대북정책의 혼란을 가져왔다는 국민 일반의 비판적인 시각과도 일치한다. 그런 뜻에서도 세후보의 답변은 「정답」에 가깝다.

따라서 세후보중 누가 대통령이 되든,우리 정부의 대북 자세가 지금과 달라지리라는 것은 당연한 짐작으로 된다.

물론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그 달라짐의 뉘앙스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그 선택은 이번 대선 유권자들의 몫이다. 북에서도 이 선택의 결과를 주시할 것이고,가능하다면 그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대북정책이 재조정될 것이고,또 재조정되어야 할 것만은 틀림이 없다. 대선의 시작으로 그 재조정 과정이 이미 시작됐다고 할 수도 있다. 지금은 대북정책의 중요한 과도기인 셈이다.

그렇다면,이 과도기 대북정책은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

이 점 정부의 근래 움직임은 대단히 염려스럽다.

그 하나는 남조선 노동당사건 등의 수사를 미적거리는 듯한 인상이다. 대선기간중 수사에 신중을 기한다는 것은 좋으나,정치와 대공수사를 혼동한다면 큰 일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발표된 수사결과에 대한 불신이 가시지를 않고,정부 고위층에 연루자가 있다는 말마저 거듭되고 있다. 정부로서는 스스로의 해명을 위해서도,밝힐 것이 있으면 빨리 밝혀야 하고,그렇게 함으로써 대공수사 능력이 건재함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북에서 우리를 보는 시각과,국민들의 불안이 어떠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다음은,이 사건에 대한 사과를 대북경협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정부가,느닷없이 이를 철회하고,남·북 고위급회담의 연내 개최를 희망한 것이다. 왜 이 시점에서 그런 유화책이 나와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는 자세변화다.

잘 알려진대로,북은 지금 대외 관계를 일절 동결하다시피 하고 있다. 우리 대선에 개입하는 교란과 비방선전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김정일후계와 주체사상을 전면에 내세운 새헌법을 채택함으로써,대내 체제의 단속과 대남 대결자세를 더욱 추스르고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 대선기간을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하고,그렇지 않으면 대선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자세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 마당에 우리가 서두를 까닭은 없다. 저들이,말기정권을 상대로한 고위급회담 연내 개최에 응한다면,그것은 대선 교란 등이 목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다 대고 유화책을 내밀어서는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오히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남북합의서 위반인 대선개입 등 근래 북의 움직임을 강력하게 항의하는 일이다. 간첩단사건을 철저히 수사해서,나중에라도 6공정부가 대공수사마저 미적거렸다는 핀잔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도 6공정부의 남은 일이다. 고위급회담은 저쪽에서 요구해도 뒤로 미루는 것이 옳다.

잘라 말한다면,말기정권이 끝까지 공을 서두를 것은 없다. 광을 낼 시간적 여유도 없다.

그런줄을 알면서도 공을 서둘다가는,자칫 북방정책의 성공을 자축하고 난뒤에 터진,KAL기 블랙박스와 같은 낭패가 또 있을 수도 있음을 명심했으면 한다.<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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