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세력·미·일등 한국전달 반대/공신력 갖춘 ICAO 조사 선택【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러시아측은 당초 블랙박스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전달하되 사고가 발생한 러시아에서 이 자료를 분석,사고원인을 규명한다는 것이 기본입장이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그동안 KAL기의 블랙박스를 인도해 달라는 한국측의 요구를 거부해왔다.
옐친 대통령도 방한을 앞둔 지난 11월14일 한국 기자단과의 회견에서 한국측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블랙박스는 ICAO에 전달해 관련 당사국이 함께 조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크렘린 당국이나 러시아 외무부측도 옐친의 방한 때 블랙박스를 휴대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서울로 떠나는 17일 새벽 옐친은 유리 페트로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국방부로부터 블랙박스를 가져오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면 옐친이 왜 마지막 순간에 이같은 지시를 한 것일까.
옐친은 한국측에 성의를 표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블랙박스를 택했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내용물이 비어있는 블랙박스를 한국측에 전달한다는 것은 상식상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특히 양국의 국가원수 사이에 이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외교적 분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옐친의 블랙박스 전달을 반대하는 일부 세력이 그 과정에서 장난을 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페르로프 비서실장은 지난 1일 홍순영대사를 만나 블랙박스 내용물이 빠진 경위에 대해 『러시아는 ICAO에 블랙박스 자료를 넘겨준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다. 이를 지키면서 한국에 성의를 표시하는 제스처로 블랙박스를 인도했으며 그 과정에서 내용물이 빠져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한국측에 설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러시아 내부에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이 여전히 가능하다. 또 미국 일본 등 관련 당사국들이 러시아가 한국측에 블랙박스를 전달하는 것을 반대해왔고 ICAO에서의 사고조사를 희망해온 사실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이같은 상황으로 볼 때 러시아 역시 이들 관련국이 일부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의심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원본의 전달은 국제적인 신뢰를 갖고 있는 ICAO에서 공동 조사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입장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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