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선거유세에 스트립쇼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물론 말단 선거운동원의 부주의에서 나온 해프닝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수단으로든지 사람들을 모으고 어떠한 수단으로든지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현 선거풍토를 반영한 한 단면이라면 걱정도 보통 걱정이 아니다.각당 후보들의 선거공약,특히 경제에 관한 공약들을 듣고 있으면 정말 당선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선심공약이라도 내세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 미국 대통령선거전 당시,각당의 선거공약을 보면 다소 과장은 있었지만 경제정책의 우선순위와 방향을 밝히는데 초점을 두고 있었다. 기껏 숫자를 제시한다는 것이 앞으로 어떻게 얼마씩 재정적자를 줄여가겠다는 것이 고작이었다.
여기에 비해 우리의 대통령후보들은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국제수지 등 모든 부문에서 구체적인 숫자까지 나열해가면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겠다는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그 결과 경제정책의 목표와 방향이 뚜렷하지 않고 진실성에 의심이 간다.
지금 우리 경제는 그동안 쌓인 거품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 3분기 경제성장이 3.1%로 급락한 것이다. 1분기 7.5%,2분기 6%에 비해 빠른 속도로 경기가 둔화되고 있다. 다행이 물가는 안정되고 국제수지는 호전되는 추세이지만 올해도 50억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 경제안정을 달성하기 위해서 거쳐야 할 단계라고 보지만 경제안정과 잠재성장률 유지라는 경제목표에 연착륙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3당 후보들의 경제공약은 우리의 현실을 무시한채 일관성없고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청사진만을 그리고 있다. 후보들 모두 3%의 물가안정과 재정긴축을 통한 작은 정부를 내세우고 있다. 그렇지만 만약 약속한 경제공약을 모두 실행에 옮긴다면 지금 예산규모의 두배도 모자라고 물가안정을 기대하기 힘들다. 어떤 후보는 인플레를 3%로 잡으면서 미 달러표시 개인당 소득을 5년동안에 3배로 늘리고 3백억달러 국제수지 흑자를 기록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아마 이러한 공약이 이루어진다면 세계경제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것이다.
현실에 관한 이해와 관련,한번 생각해봐야 할 공약중에 「쌀시장 개방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거나 「대통령 자리를 걸고 서라도 쌀시장은 지키겠다」는 것 등이 있다.
아마 많은 수의 국민들은 우리 경제를 괴롭히는 가장 큰 외부압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농산물시장,서비스시장의 개방,지적소유권 보호 강화 등을 요구하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최악의 다자간 협상이 최선의 양자간 협상보다 낫다는 점이다. 보호무역주의,지역주의가 팽배해 있는 현 상황에서 미국,일본,EC 등과 직접 맞부딪쳐 양자간 협상을 하게 되면 우리는 경제력에 눌려 더 많은 희생과 양보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경제를 닫아둘 수도 없는 실정이다.
다자간 협상에서도 물론 협상이 선진국들 이해위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이들간의 이해가 서로 상충되어서 협상과정에서 많은 무리한 요구들이 중화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우루과이라운드와 같은 다자간 협상에서 무역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물론 현 시점에서 쌀시장 개방을 막는 것이 최선책이다. 그렇지만 만약의 경우에 대비,차선책도 철저히 강구해 놓아야 한다. 쌀시장 개방불가라는 원칙만을 고수하다가 협상에 따른 모든 실리를 잃게 되고 사후 대책마련에 소홀하면 정말로 국내 농업기반이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일본은 이제까지 거부해온 개방을 의미하는 쌀시장의 관세화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굳혔다고 한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의 입장이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각당의 후보들은 쌀시장 개방불가 입장만을 되풀이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국민적 합의를 얻어 농업구조를 개혁하고 경쟁력을 갖춘 우리 농촌을 만들지는 밝혀야 할 것이다.
대통령선거 공약을 판단하는 또다른 기준은 실천력과 개혁의지이다. 각당 후보들의 선거공약을 보면 이구동성으로 금융자율화와 금융개혁을 공약하고 있다. 그렇지만 필요한 구체적인 방안도,개혁의지도 결여된 느낌이다.
지난번 상업은행 대형 금융사고의 원인을 단지 일개 지점장의 사리사욕과 수신고를 늘리려는데 집착한 나머지 발생한 사고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문제의 본질은 우리 금융산업의 낙후와 구조적 모순에 있다.
은행과 비은행간에 인위적인 칸막이가 있고 각기 다른 금리가 존재하는 가운데 각종 규제를 받고 있는 은행이 비은행과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꺾기와 사채시장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채시장의 돈을 끌어들여 수신고를 늘려야 유능한 지점장이 되고 은행의 인사가 몇몇 유력인사의 손에서 좌우되는 현 상태에서 이와같은 금융사고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이와같은 금융사고가 더이상 발생하지 않게 막고 금융산업의 낙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금융의 자율화와 개방화가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금리자유화가 선택되어야 하고 경영의 자율권이 주어져 책임경영제가 정착되어야 하며 금융산업개편과 금융실명제도 실시되어야 한다. 각당의 후보들은 낙후된 금융산업을 회생시키기 위한 실천 가능한 구체적인 방안과 개혁의지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경제 현실에 비추어 냉정하게 각당 후보들의 공약을 평가해야 한다. 진실성·일관성·실현 가능성·개혁의지가 있는 공약을 내세운 후보와 그렇지 못한 후보를 구별해야 한다. 경제현실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가지고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후보자와 그렇지 못한 후보자를 구분해야 한다. 그래서 민주 국민의 차분한 역량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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