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철과 선거철이 겹쳤다. 매년 이맘때면 수험생 어머니들의 끊이지 않는 발길로 호황을 누려온 미아리 점골목이 이번에는 대선 특수까지 겹쳐 즐거운 비명이라는 소식이다.대선 결과를 말 그대로 미리 점쳐보려는 멀쩡한 신사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는 얘기다. 주요기업체들이 직원을 보내 「줄대기」의 방향을 정하는데 참고한다는 것이다. 사업하는 사람들의 장삿속이야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문제는 대선 고지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는 후보 주변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운을 점쳐보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운을 「만들어」 자랑하고 다닌다는 점에서 한수 더 뜬다.
선거일을 12월18일로 잡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진 민자당은 이날의 특별한 의미를 그냥 흘려보내려 하지 않는다.
선거날짜를 가지고 「12+18=30」이라는 작위적인 수식을 만들고 금요일의 금자를 덧붙여 「김03」이라는 결과를 끌어낸다. 김영삼후보의 승리는 하늘의 뜻임을 내세운다.
민주당도 지지 않는다. 한 한학자가 김대중후보의 이름풀이로 내놓았다는 「일도용사 인인대사성」이라는 한문구절이 화제로 오르내린다. 「하나로써 용사에 이르니 남으로 인하여 큰 일을 이룬다」는 정도로 풀이된다. 12월18일은 일진이 무진 즉 용날이고 19일은 기사 즉 뱀날이니 바로 김 후보의 승리를 예시하는 것이라는 자랑이다.
국민당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정주영후보가 바로 「정감록」에 나오는 정도령이다』는 요지의 「계시」(허운 저)라는 책의 광고를 당사에 붙여 놓고 있다.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고 낙원을 이룰 구세자로 정 후보가 들먹여진다.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큰 일을 앞두고 이해당사자들이 결과에 대해 궁금해하고 작은 위안이라도 찾겠다는 것을 굳이 이해하지 못할바는 아니다.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이같은 참어를 떠들어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주겠다는 발상은 치졸하기 짝이 없다.
각 후보를 위시한 정당 관계자들에게서 국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예언」이 아닌 비전이며 이를 실현할 능력과 용기임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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