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관서 벗어나 진지한 「후보연구」를아직 어떤 후보를 찍을지 마음을 못 정했다고 말하는 소위 「부동표」는 『어쩐지 후보들이 다 마음에 안든다』는 사람들이다. 『이 후보는 이런 것 같고,저 후보는 저런 것 같아서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쩐지 이런 것 같다』는 느낌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그동안 신문 잡지 텔레비전 등을 통해서 얻은 각종 정보,과거 군사정권 아래 조작된 이미지,흑색선전·지역감정·후보 부인들의 인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각 후보들에 대한 선입관 내지 사적인 감정이 유권자들의 가슴에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다.
어쩐지… 어쩐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대개 이렇다.
『ㄱ후보는 어쩐지 지적인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사용하는 어휘가 극히 한정돼 있고,텔레비전에서 유세장면을 짧게 따서 소개하는데도 문장을 제대로 완성 못하는게 자주 눈에 띈다. 87년 선거 때도 복모음을 발음 못한다고 흉을 잡혔는데 아직도 발음을 안고치니 귀에 거슬린다. 주변에 일류 두뇌들이 많이 모였지만,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역시 자신의 노력이 아닐까』
『ㄴ후보는 어쩐지 신뢰가 안간다. 머리가 너무 좋아서 필요할 때마다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말을 바꾸는 것 같다. 그의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것은 과거 군사정권의 조작이었다는 것을 믿지만,그가 어느정도로 진보적인 생각을 숨기고 있는지가 분명치 않다. 이번에 그는 재야와 연대했는데 지금까지 강조해온 그의 새로운 이미지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ㄷ후보는 어쩐지 심신의 건강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의 연설을 잘 들어보면 공약을 조목조목 나열하기 보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모든 것을 다 잘하겠습니다」라는 식인데 그 「모든 것」이 무엇인지를 그가 잘 꿰뚫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가 한평생 이룩한 경제기적에는 신뢰가 가지만,앞으로 그가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국사를 이끌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런 걱정들중에는 사실인 부분도 있고,후보들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후보들은 『음해와 공작 때문에 이렇게 나쁜 이미지가 형성됐다』고 주장해왔으며,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기 위해 오늘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유권자가 후보들에 대해 이모저모 따져보고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왜 유난스럽게 『어느 후보도 마음에 안든다』는 불평을 하고 있는지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이번 선거는 「덜 싫은,덜 나쁜,덜 의심스러운 후보」를 뽑아야 할 만큼 후보들의 자질이 떨어지는 최악의 선거일까.
유권자들은 자기 자신이 지나친 이상주의자나 극도의 정치적 허무주의,심하게 말하면 무책임한 파괴심리에 빠져 선거분위기를 어둡게 하는 것은 아닌지 겸허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많은 유권자들은 끝없이 극적인 돌발사태를 기다리고 있다. 그 돌발사태가 어느 후보에게 유리하고 불리할 것인가를 계산하기 보다는 극적인 사태를 핑계삼아 후보를 정하겠다는 심리가 팽배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책임회피다. 후보들이 더 골탕을 먹고 더 진흙을 묻히기를 원하는 심술까지 상당히 퍼져있다고 느껴진다.
유권자들로부터 새로워져야 한다. 유권자들로부터 밝은 눈으로 우리가 헤쳐나갈 미래를 바라보고,우리와 함께 미래로 나아갈 대통령감을 골라야 한다. 어쩐지… 어쩐지… 라는 의혹에 끝없이 머물러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후보 하나하나에 대해서 연구하고 판단해야 한다. 이번 선거가 「신 안나는 선거」라는 인식에서 벗어나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도전이 많은 시기다. 우리는 경제의 재도약과 통일이라는 양대 도전을 눈앞에 두고 있고,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교육 등 각 분야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앞으로 5년 새 대통령의 임기안에 동독식으로,또는 루마니아식으로 붕괴할 위험이 매우 높다는 예측이 지배적이고 남한의 대응에 따라 민족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우리는 제2의 시험대 위에 서게 된다. 우리는 군사독재 아래서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기적을 이뤘다.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를 하면서도 경제기적이 가능하다는 진짜 실력을 세계에 보여줄 차례다.
이렇게 중대한 시기에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을 뽑으면서 우리는 좀더 진지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왜 클린턴이 없는가라고 한탄할게 아니라 여자관계 등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던 클린턴을 일으켜 세워서 대통령감으로 만들어갔던 미국인들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나와 있는 후보들은 나쁘지 않다. 흠이 있다면 대부분의 후보가 신선감이 없다는 것이다. 후보들을 너무 깎아내리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정치가 국민을 너무 실망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선거를 코앞에 두고 국민이 정치를 끝없이 발로 걷어차기만 한다면 그것은 결국 국민의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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