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번 방한중 노태우대통령에게 넘겨준 대한항공 007기의 피격자료는 핵심이 빠진 「껍데기」로 밝혀졌다고 한다. 2개의 블랙박스는 테이프가 감겨있지 않은 빈통이었고 블랙박스와 분리되어 있는 4개의 테이프도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비행기록장치(FDR)가 빠진채 음성녹음장치(CVR) 뿐이며 그나마 녹음상태가 극히 불량하고 조작의 흔적까지 보여 피격진상 규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블랙박스의 인도에 따라 2백69명의 원혼을 북양의 차디찬 바다 속으로 잠기게한 KAL 007기 피격미스터리가 참사 9년만에 마침내 풀리려나했던 기대가 무산되고 말았으니 국민적 실망이 크기만 한데,하물며 희생자 유족들이 또다시 맛보아야하는 아픔과 배신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
KAL피격 참사는 6·25문제와 함께 한국과 러시아간에 걸려 있는 불행한 과거일뿐 아니라 그 진상규명이 국제적인 관심라로 되어 있어 양국간 관계 발전을 위해 해결하고 정리하지 않으면 안될 현안중의 하나다. 그동안 러시아도 이를 인식하여 유족의 참사 현장방문,일부 자료의 공개 등 문제해결에 힘써온 것이 사실이다. 블랙박스의 전달은 러시아 정부의 가장 확실한 성의 표시로 내외의 호의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이를 바탕으로 양국간에 다각적인 협력증진 합의가 이루어졌던만큼 블랙박스 내용부실이 몰고올 후유증이 심각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외교경로를 통해 블랙박스가 빈껍데기로 된 경위를 알아보고 조작하지 않은 원본의 인도를 강력히 촉구하는 등 즉각적인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다.
먼저 규명해야 할것은 블랙박스의 변질과 손상이 러시아 정부의 고의인지,또는 실무작업중의 착오나 과실인지의 여부다. 사건발생이후 9년의 세월이 흘렸고 그동안 러시아가 격변기를 거쳤으므로 그 소용돌이 속에서 블랙박스가 손상되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러시아 정부가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진실을 은폐,조작한 블랙박스를 넘겨준 것이라면 이를 그대로 묵과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KAL기 피격진상의 완전규명에 전체 북방외교의 성패가 걸렸다. 정부의 대응과 조치를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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