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와 격조와 설득력이 있다면…연설은 짧아야 좋다. 짧되,알맹이가 들었으면 더욱 좋다. 그 짤음속에 격조가 있고,나름의 설득력을 지녔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매일 몇차례씩 열리는 대선 유세장을 돌다보면,그런 연설을 한번쯤은 들을 수가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짧기와 알맹이,격조와 설득력이란 모든 면에서,역사상에 가장 뛰어났던 연설은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1863년 11월19일)이다.
미국의 고교생이라면 누구나가 외고있을 연설,『인민의 정부,인민에 의한 정부,인민을 위한 정부』라는 민주주의 정의로해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 연설은,그 길이가 2백72단어에 불과하다. 그러나 10개 문장으로 구성된 이 짧은 연설속에,링컨은 미국의 이상,남북전쟁을 피흘려 싸워야 하는 까닭,민주주의에 대한 믿음 등을 남김없이 담았다.
링컨은 이 연설 원고를 게티스버그로 가는 기차속에서 편지봉투에 썼다. 그러나 링컨이 이 연설을 오래전부터 구상했고,연설의 초고를 그 전날에 이미 써 두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렇게 다듬은 그의 연설은 단 2분 남짓으로 끝이 났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클린턴의 후보지명 수락연설이 52분,부시의 수락연설이 54분 길이였던 것과 비교하면 어떤가.
연설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그때 사진기술로는 그 역사적인 연설장면을 기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연설초고는 남아 있으나,게티스버그에서 연설하는 그의 모습은 남은 것이 없다.
그가 남긴 또 하나의 명연설,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있은 그의 두번째 대통령 취임연설도 길이 7백 단어 뿐이다. 그 안에 전쟁의 지도이념과 남북화해의 호소가 담겨있다.
또 하나 짧은 명연설은 2차대전을 이긴 처질 영국 총리의 의회 연설이다. 그는 45년 5월 독일의 항복 소식을 듣고,의회에 나가 이렇게 보고했다.
『오늘 독일 정부가 항복 했습니다. 이로써 독일과의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국왕 폐하 만세!』
이것이 전부였다. 승전을 위해서 『피와 땀와 눈물』을 호소하던 그의 열변은 간곳이 없다. 그러나 말 없음이 여운속에 온 영국 국민이 겪었던 고뇌와 자부가 메아리친다.
이쯤되면 연설은 하나의 마술이다. 천재만이 할 수 있는 마술이다.
그러니 한겨울 유세장을 돌며,명연설을 찾는다는 것은 천재를 찾는 것과 다름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 정치 상식에 비추어서는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역시 유세연설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하지만,희한하게도,어떤 후보는 5분 연설,10분 연설로 대선유세를 마치더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그 후보는,국가대사를 논한다고 해서,말이 길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장광설이 대통령의 자격이 아님도 그는 알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적어도 그의 유세는 명연설의 첫째 요건을 갖추고 있다. 연설은 짧아야 한다는 내 생각에 꼭 들어 맞는다. 그 연설을 듣자고 2백리를 달려왔건,추위속에 한시간 이상을 기다렸건,그의 연설은 짧아서 좋다.
그러면 짧아서 좋은 그 연설의 알맹이는 어떤가.
그러나,유감스럽게도 그의 연설에는 알맹이가 없다. 알맹이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으나,나로서는 씹어 삼킬수가 없다.
그는,서울춘천간 철도를 내년 상반기중에 복선화 해서 수도권 전철과 연결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그게 가능할까.
청량리춘천 사이 철도는 87.3㎞. 이를 복선전철화하는 사업의 타당성 조사는 이미 재작년에 있었다. 그 결과는,이 사업의 준공적기는 2003년,공기 6년을 역산하면 착공적기는 98년이라는 것이었다. 공사비는 1㎞에 1백20억원씩,어림잡아 1조4천억원.
그는 이 사업을 내년 상반기중에 마친다고 공약했다. 내년 2월25일 대통령으로 취임해서,6월말까지는 1백25일,잘하면 이 기간중에 기공식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연설은 짧아야 좋다. 짧되,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거짓이 없어야 한다.
나는 명연설이 있는 그런 정치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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