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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국」의 길을 묻자/김성우 상임고문·논설위원(선택의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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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국」의 길을 묻자/김성우 상임고문·논설위원(선택의 길목)

입력
1992.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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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나라” 처방없는 구호뿐… 미래상 안보여그래도 우리는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참으로 중대하면서 어려운 선택이다. 그렇다고 포기할수도 없는 선택이다. 민주국가의 주권자가 되는 일이 얼마나 큰 결단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를 국민당은 깨달을 것이다. 자유주의가 얼마나 부자유스러운가를 느낄 것이다. 적어도 이번 대통령 선거의 유세장을 둘러본 사람이면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선거전의 초반을 불붙인 중부권에서는 유세장마다 아직은 마음을 잡지못하는 수많은 유권자들의 초조로 가득차 있었다. 각당의 당원들이 수기를 흔들며 외쳐대는 연호의 열기 그늘에 부동표들이 꼼짝 않고 냉랭했다. 그 냉담은 무관심이라기보다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전국적으로 30%를 훨씬 넘는다는 부동표를 겨냥해 각 후보들은 총공세지만 선거전 1주일의 성과는 이들의 의중을 낚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각당의 대통령 후보들의 연설은 목청만 달랐지 곡조는 엇비슷했다. 각 정당의 주장은 공통적으로 「변화와 개혁」 「경제재건」의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종래의 여당은 「안정」을 호소했지만 이번에는 다수당마저도 「이대로는 안된다」고 외친다. 그만큼 초록이 동색이 되어 버렸다. 「한국병」이라는 것만해도 그렇다. 우리 사회가 병들었다는 것을 모든 당이 동감한다. 다만 한쪽 당은 「한국병을 고칠 주치의가 우리당 후보」라고 주장하고 다른당들은 「한국병을 만든 당이 어떻게 그 병을 고치느냐」 「대권병에 걸린 사람들이 한국을 병들게 했다」고 맞서는 것이 다를 뿐이다.

유세장에 가서 들어보면 우리나라는 온통 병동이다. 구석구석이 썩어가고 있다. 환부와 치부가 다 드러난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형편없는 나라이던가 싶다. 난파선을 타고 있는듯한 불안감을 준다. 나라의 자존이 걱정스럽다. 그러면서 국민을 향해서는 「총명하고 부지런한 우리 국민」이라고 아첨을 하지만 의기꺽인 국민들은 속지 않는다.

선거는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위해 있는 것이다. 나라의 현상을 파헤쳐 진단하고 치정을 비판하는 것은 새로운 국력의 창출을 위한 것이라야 한다. 온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기 위한 것이라야 한다. 그런데도 국민들을 절망만 시켜놓고 그 절망을 뛰어넘을 믿음과 의욕을 어느 당도 주지 않는다. 늘어놓는 정책이니 공약이니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감언보다 조금도 신선할 것이 없다.

유심히 귀기울여보면 당마다 정책이라고 내세우는 것들은 거의가 기성품들이다. 인쇄해놓고 파는 것을 사온것 같다. 설득력이 약할 수 밖에 없다. 공약이라는 것도 대개가 지역성의 것이다. 총선때 국회의원 출마자들이 하던 소리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 선거를 하고있다.

대통령은 나라의 지도자다. 확고한 지도이념과 국가경영의 철학을 제시하여 나라가 갈 길을 가르켜 주어야 한다. 그런데도 뚜렷한 비전들이 없다. 나라의 미래상을 그린 그림이 안보인다. 21세기의 우리나라 위상을 국민들은 알고 싶다. 아시아의 세기를 맞는 통일 한국이 세계의 중심국이 안될 것도 없다. 그것이 바로 지도자에 달렸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는 멀리 바라보아야 비틀거리지 않는다. 초보 운전자처럼 코앞만 내다보고 있을때가 아니다. 각당의 후보들은 자기 임기의 5년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근우만 있고 원려가 없다. 무궁한 조국의 만세를 부르는 소리가 약하다. 「새한국」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것은 구호에 그칠뿐 새로운 한국상이 어떤 모양의 것인지 구상이 없다.

후보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하고 「정권이 바뀌어야 나라가 깨끗해진다」하고 「깨끗한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해묵은 「부정부패의 일소」나 「도덕성의 회복」도 공용어다. 실로지금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청정한국」의 건설이다. 깨끗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급하다. 새로운 정치도,경제의 재건도,건강한 사회도 정화가 시발점이다. 이것이 곧 한국병의 치유다. 어느 당이나 인식은 같이 하면서도 분명한 처방을 내놓은 것이 없다. 윗물 맑히기나 정권교체나 깨끗한 정치 자체만으로는 안된다.

이렇게 각당은 초반의 유세에서 당의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많은 유권자들이 망설인다. 이 망설이는 표가 당략을 좌우하게 되어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TV연설을 통해 인물의 차별화에 기대해 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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