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문학·문학인/더가까워진 2백만동포의 어제와 오늘(중국조선족:13)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문학·문학인/더가까워진 2백만동포의 어제와 오늘(중국조선족:13)

입력
1992.11.28 00:00
0 0

◎“이념서 현실로”… 예술적 변성기/개방이후 세계 문학사조에 관심/사회주의 모순고발 탄압받기도/연변에 한글출판사 3곳뿐… 개인 작품집 출간 어려움92년9월19일자 흑룡강신문은 전체 4개면중 1개면을 조선족시인 김철씨(60)를 위해 할애,중국민족 문화성에 의해 「91년 계관시인」으로 선정될 만큼 문학적 비중이 큰 김 시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집중 소개했다. 「중국 조선족 시단의 초창기를 선도해왔고 문화 대혁명후 조선족 문단의 재기를 이끌어온 시인」의 20번째 시집 출판,문학인생 40년,환갑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태어나 전남 곡성에서 살았고 10세때 중국 길림성으로 이주한뒤 문학외길을 지켜온 김 시인은 1949년 중공정권 수립이후를 가리키는 당대문학 시대에서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계속된 실향경험은 인간의 원초적 정서인 향수를 시 속에 용해되게 했고 조선족 고유의 전통에 접맥된 서정시를 빚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조선족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1만5천여행의 장편서사시 「새별전」(1980년)은 조선족 시문학이 거둔 대표적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소설에서는 「격정시대」 「해란강아 말하라」의 작가 김학철씨(76)가 최고봉으로 꼽힌다. 함남 원산 태생인 김씨는 중국육사를 졸업,조선의용군으로 일본군과 싸우다 붙잡혀 감옥에서 한쪽 다리를 잃고도 꺽이지 않은 기개로 혁명투사·지사라는 존경까지 받고 있다.

작고시인 중에서는 「모아산」 「북두성」 등의 이욱(1907∼1984년)이 민족적 색채가 뚜렷했던 서정시인으로 추앙을 받고 있으며 생존자로는 시인의 경우 김철씨외에도 임효원(66) 김성휘(59),소설가로 김학철씨 외에 62년에 최초의 장편소설 「범바위」를 낸 이근전(64) 임원춘 김창걸(81),극작가로는 황봉룡씨(67)가 두드러진다.

김철시인의 경우처럼 신문이 한 시인을 기려 4분의 1이나 되는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문학을 위해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학전문지나 문학작품 발표지면의 부족을 입증하는 것으로 아직도 신문이 문예활동에 있어서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일이다.

실제로 연변엔 우리말 출판사가 3개에 불과하고 개인작품집을 내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 문학의 대중화는 좀더 시일을 기다려야 할 형편이다.

한글로 발행되는 문학지는 중국작가 협회 연변분회 기관지인 「천지」와 평론집 「문학과 예술」 「아리랑」 등이며 흑룡강성에서 「송화강」 길림에서 「도라지」 장춘에서는 「장백산」 이 발행된다. 전문 문학지는 아니지만 문학 과학 상식 등 종합지 성격을 지닌 「은하수」,한글주간지 「연변여성」 「청년생활」도 발표무대로서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잡지외에 흑룡강신문(하얼빈) 연변일보(연길) 요령신문(심양) 길림신문(길림)의 문예란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TV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시인 작자로 인정받은 특별한 등단형식은 아직 없다. 신문 잡지 등에 글을 많이 기고해 인기를 얻으면 자연스럽게 작가로서 인정을 받는다.

56년에 결성된 중국 작가협회 연변분회의 회원은 한족 80여명까지 합쳐 모두 5백여명. 이들중 일정한 노임을 받으며 창작에만 종사하는 전직작가는 현재 10명정도로 모두 소설가이다. 전직작가는 작가협회가 재능 성과 장래성 등을 평가,주 정부에 추천해 선정되는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작가협회는 소설 시 평론 번역 소년동아 한문창작 등 6개분야로 나뉘어져 있으나 장르별 넘나듦이 많은 미분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 조선족의 문학사조에 대해 작가협회 연변분회 부주적인 조성일 연변 사회과학원 부원장(56)은 『광복전부터 사실주의가 압도적이며 낭만주의가 바탕에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개혁개방과 함께 현대사조가 유입돼 문학사조도 다양해지고 있으며 최근엔 해외사조의 직수입에서 비판적 수용으로 물줄기가 잡혀가고 있다.

작가협회 연변분회 주석인 이근전씨는 자신들의 문학수준을 한국문학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체제와 이념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 조선족 문학은 1백년사를 헤아리지만 80년대부터 황금기를 맞았다고 할 수 있다. 90년에 발간된 「중국 조선족 문학사」(조성일·권철 등 공저)는 시대구분을 근대문학(이주이후∼1920년) 현대문학(1920∼1940년) 당대문학(1949년이후)으로 설정하고 현대문학과 당대문학을 정치적 변화에 따라 20∼31년,31∼45년,45∼49년,49∼66년,66∼76년,76년이후 등으로 세분하고 있다.

개척시기에는 이주·정착 및 개척세대를 주인공으로 한 계몽사상이 주류였다. 일제의 국권침탈 3·13운동(중국 조선족의 3·1운동)시기에는 민족독립,30년대에는 항일이 주된 테마였다. 이어 광복에서 중공정권 수립까지의 특수한 문학시기엔 광복의 기쁨과 국공내전,49년이후에는 사회주의 혁명·경제건설이 새로운 주제로 등장했다.

어느 시대의 어느 예술가도 정치적 현실로부터 자유스러울수 없지만 중국 조선족 문인들도 사회주의 건설에 봉사해야 하는 한계 상황에서 창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보통인물 가운데 긍정인물,긍정인물속에 영웅인물,주요 인물 가운데 더욱 주요인물을 설정,부각시켜야 한다는 사인방시대의 문학이론 「삼돌출」이난 광명화 민족화 개념화 등의 도식적 이론과 규범은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문학발전을 저해해온 요인이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공산주의 모순을 고발한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 원고를 홍위병들이 가택수색해 압수하는 바람에 10년간 옥고를 치른 김학철씨는 문학이 「사회주의 앞으로 갓」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한 잡지사 기사가 반우파 투쟁시기에 겪는 숙청과 고난을 그린 이 소설을 아직 발간하지 않고 있는 김씨는 『이제 작가는 진실을 써야 한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와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문학이념은 완전히 극복되지 못한 상태로 교조주의적 색채가 아직도 남아있다. 김씨는 건전·순수만을 지향하다보니 문학작품에 재미가 없고 기교가 떨어지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북경대 조선문화 연구소 부소장 이선한교수(43)는 체험의 폭과 깊이,지식수준이나 문예적 소양이 부족한 점을 거론하고 있다. 연변 등 조선족이 많이 사는 동북 3성은 중국의 오지로 교통이 불편하고 생활의 울타리가 좁아 좋은 작품을 배태할만한 체험이 축적되기 어려우며 세계적 창작조류의 수용도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문학평론가 임헌영씨(51)는 「해외동포 문학의 의의」라는 글(한국문학 91년 7·8월 합병호)에서 중국동포 문학의 특이한 현상으로 민족해방 투쟁을 소재로 한 창작은 성행하지만 분단이후 상황이나 통일지향적 쟁점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하거나 고의로 외면하려는 인상이 짙다고 지적했다. 남·북한의 어느 한쪽에 대한 정치적 지지나 비난을 삼가하려는 문학외적인 영향때문에 이념적 탈색화 현상을 보이면서도 민족적 현실에 냉담해지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의 대세는 개혁 개방이후 사회주의 이념이 쇠퇴하면서 인간의 문제,민족적 관심사로 눈길이 돌려지고 있다. 한중수교에 따라 새로 전개되는 상황이 앞으로 문학에서 어떻게 수용될 것인가 하는점과 문학에서의 동질성 회복 문제가 새로운 관심거리이다.

지난 17일 중국동포 작가 36인 수필집 「서울바람」의 출판 자축연에 참석했던 작가들도 연변을 중심으로 한 중국 조선족 문학과 한국의 문학이 동일지향의 문학이 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작가협회 회원인 연변대 권철교수(63)는 창강 김택영(1850∼1927년) 단재 신채호(1880∼1936년) 신정(1879∼1922년) 강경애(1907∼1943년) 등의 중국내 문학활동이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경시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중국 조선족문학이 빠진 한글문학은 한 모퉁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상호연구·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새롭게 문학적 자아에 눈을 떠 예술적 변성기로 접어들어가는 중국 조선족문학의 향후 전개양상이 주목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