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잇단 각료 해임 유화자세/보수파도 「불신임」 상정 않을듯/「개혁완화」 조건… 가이다르 내각 유지전망【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대충돌을 향해 치닫던 러시아의 보호세력이 인민대표대회 개막을 앞두고 극적으로 타협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행정부는 내달 1일 개막되는 인민대표대회에 앞서 러시아의 최대 야당세력인 시민동맹측과 경제위기 대처방안을 공동으로 마련하는가 하면 의회 보수세력과는 「정치휴전」을 모색,일부 각료를 해임시키는 등 타협을 향한 정지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는 이번 대회에서 옐친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안이 상정될 것이라는 소문이 끈질기게 나돌고 있다.
그동안 경제개혁 문제를 둘러싸고 사사건건 갈등을 빚어왔던 현 정부와 의회내 보수세력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보수세력은 예고르 가이다르 총리 대행이 이끄는 현 정부에 극도의 불신감을 갖고 있으며 옐친 대통령의 비상대권 박탈을 노리고 있다.
따라서 옐친 대통령 정권은 현 인민대표대회에서 과반수이상의 지지 대의원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보수세력과 충돌할 경우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된다는 점을 감안,어느정도 보수세력과의 타협점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돼 왔다.
이같은 예상을 뒷받침하듯 옐친 대통령은 지난 24일 러시아연방 소속 각 공화국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 『정치적 휴전과 일정기간의 안정이 필수적』이라며 정치휴전을 제외했다.
이에 대한 보수세력의 반응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였다. 의회내 반옐친 세력의 거두로 꼽히는 루슬란 하스블라토프 최고회의 의장이 옐친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93년말까지 연장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다. 대통령 비상대권은 지난해 인민대표대회에서 1년 시한부로 옐친 대통령에 부여된 것으로 금년말로 시효가 만료된다. 자유로운 각료 임명권과 초헌법적 대통령 발령권한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비상대권은 옐친 정권이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계속 추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반옐친 진영에서는 옐친 행정부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는 예정대로 박탈해야만하는 「양면의 칼」이다.
이처럼 예민한 문제를 보수세력측에서 타협할 수 있다고 나선 것은 뜻밖이다. 물론 조건을 제시했다. 지난 18일 최고회의에서 통과된 정부조직 법안을 발효시킨다는 조건이다. 각료의 임명시 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한 정부조직 법안은 재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하는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어야만 효력을 발휘한다.
의회 보수세력은 정부의 독주를 막는 제도적 견제장치로 정부조직 법안을 대통령 비상대권과 맞바꾸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옐친 대통령은 또 보수세력으로부터 공격의 표적이 되어온 겐나니 부르불리스 국무장관과 예고르 야코볼레프우스탄키로 방송국(전 소련 국영방송) 사장과 미하일 플로라닌 부총리겸 공보장관을 해임했다.
모스크방에서는 이들의 해임을 보수세력과의 대타협을 위한 「전주곡」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안드레이 코지레프 외무장관도 보수파와의 타협의 일환으로 사직이 결정됐다.
가이다르 총리대행도 최근 의회내의 최대 정파인 시민동맹을 겨냥한듯,『시민동맹과 정부의 경제개혁 프로그램이 차이점 보다는 유사점이 더 많다』고 호의적 태도를 보였다. 실제로 양측은 향후 4개월간 경제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비상계획안을 마련,인민대표대회에 상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바로 옐친 대통령과 가이다르 행정부가 반정부 색채의 시민동맹과 일정조건하에서 「제휴」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양세력의 거래조건은 경제개혁의 속도와 내용에 대한 타협이다.
이 타협점은 최근 20%까지 떨어지고 있는 공업생산력의 하락을 막기위해 시장경제로의 전환속도를 다소 늦추고,정부가 최소한의 생계기준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품목의 생필품값 및 공공서비스 요금을 일정기간 동결하고 정부가 초인플레를 막는데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타협은 그동안 현 정부의 입장을 강력히 비판해왔던 국영기업체 간부 등 기득권 계층의 견해를 대체로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르카디 볼스키 러시아 산업연맹 회장이 이끄는 시민동맹의 소속원들이 대부분 이들이며 이들은 시장경제로의 급속한 전환과정에서 막대한 피해를 봤다.
시민동맹은 옐친 정권의 급진적인 경제개혁에 제동을 거는 대신 현 정부를 정치적 곤경에 빠뜨리지 않는다는 거래를 한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옐친 진영은 인민대표대회를 앞두고 보수세력의 예봉을 피할 수 있는 근거는 일단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보수세력의 가이다르 총리 불신임안 상정을 막기위해 일부 각료를 사전에 경질,「가이다르 개혁호」의 좌초를 막는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옐친 대통령이 개혁노선 고수를 위해 취한 일련의 타협안이 이번 인민대표대회에서 옐친 진영 최대의 승부수로 빛을 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